<취재일기>감사내용 얼버무려도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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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감사원이 최근 이상기류를 타는게 아닌가 하는 지적이 있다.9일 감사원이 발표한 국가기관의 연도말 예산남용실태 감사 결과를보면 감사에 성의도 안보이고 뭔가 숨기려 한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생기기 때문이다.
감사원이 이날 밝힌 93년 不用額(쓰고남은 예산)은 1조1천8백96억원이다.이는 감사를 마친 시점이 12월 24일이므로 연말까지 남은 1주일간 각부처가 추가집행할 예산액을 전망해 감사원이 추정한 액수다.
그러나 재무부가 집계한 지난해 연말 최종 不用額은 2조6천억원이나 됐다.감사원 추정치의 무려 두배이상이나 예산이 남아돌았다는 얘기다.감사원 추정이 주먹구구식이었다는 결론이 나온다.재무부에 한번 확인만 해도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
감사원은 또 극히 일부 例를 제외하고는 부처별로 不用額이 왜생겼는지,또 액수는 얼마며 이 돈을 어디에 어떤 용도로 轉用했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이 부분은 감사를 안했다는 것인지 해놓고도 파장이 우려돼서 공개를 꺼리는 것인지 알 수 없다.감사원은 감사결과를 토대로 최소한 이들이 남긴 예산을 어떻게 잘못 썼는지는 밝혔어야 했다.부처가 연도말에 예산을 물쓰듯 한다고 해놓고 그 내용을 밝히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감사원은 또 不用額중 절반은 사용할 필요가 없어서 남아도는 예산이라고 했다.그러나 이는 사용할 필요가 없다기보다는 예산지원이 늦게 이루어져 집행이 연기됐거나 사업중단등에 따른 불가피한 不用額으로 드러났다.엄청난 오해를 부를수 있는 내용을 얼버무려 발표한 것이다.그나마 不用額 내용중 나머지 25%는 왜 생겼는지 밝히지 못하고있다.
재무부는 불용액중 상당부분은 철도운임.산재보험금지출.농지산지전용부담금수입 감소등 稅收감소로 부득이하게 생긴 것이라고 밝혔다.감사원의 발표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다.
감사결과를 의결하는 감사위원회(위원은 차관급)가 이런 감사결과를 어떻게 통과시켰는지 의심스럽다.
李時潤감사원장은『행정이 투명해야 하듯 감사결과도 납세자인 국민에게 소상히 알려야 한다』고 수차 천명했다.그러나 이말은 중간관리자들의 귀에는 남의 기관장 푸념정도로 밖에 들리지 않은 것일까.실무자들의 감사결과 발표를 보면 李원장의 지시는 무색해지기 일쑤다.감사원이 한건주의의「부실감사」에 빠진 것이나 아닌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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