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로 한 걸음 더 중국 '반독점법' 제정 가시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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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한국의 공정거래법에 해당하는 '반(反)독점법'이 중국에 연내 도입될 가능성이 커졌다. 1994년 이후 13년을 끌어온 반독점법이 통과되면 중국 시장의 경쟁 질서가 잡히겠지만 외국인 투자 기업에 대한 중국 정부의 견제도 강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신화통신은 21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한국의 국회에 해당)가 24일부터 1주일간 제10기 전인대 상무위 29차 회의를 열어 반독점법 3차 심의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국무원(중앙정부) 반독점법 수정위원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반독점법 2차 심의 이후 법 제정안에 큰 이견이 없어 이번 3차 심의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전인대도 올 초 연내 입법 계획을 통해 반독점법을 늦어도 연말까지는 통과시키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었다.

◆반독점법 제정안의 핵심 내용=중국 정부가 마련한 반독점법은 선진국의 공정거래 관련 법률과 큰 골격이 유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독점법 초안은 중국의 국유기업이든 외국인 투자기업이든 시장점유율을 일정 비율 이상 초과하는 기업에 대해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하지 못하게 막고 독과점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이를 통해 기업 간에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 입법의 가장 큰 취지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중국 정부의 비호를 받으면 '당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시장을 장악해 온 중국 국유기업의 입지가 줄어들 공산이 커진다.

반독점법은 기업의 인수합병(M&A) 과정에서 반드시 정부 당국의 반독점 심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또 중앙과 지방정부가 행정상의 권한을 이용해 특정 기업이 독점적 이윤을 보장해 주는 행위, 즉 행정독점도 금지된다.

◆13년 논란에 종지부 찍나=중국 정부는 94년 5월 이후 현재까지 반독점법 제정을 놓고 지루한 논란을 벌여왔다. 반독점법을 도입할 경우 시장에 상당한 여파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온 것이다.

그러나 세계 500대 기업에 들어가는 중국 기업이 등장할 만큼 중국 기업들이 성장했고,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중국의 시장경제 발전이 가속화되면서 더 이상 미루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중국의 최대 무역상대인 유럽연합(EU)이 중국에 시장경제지위(MES)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중국에 반독점법이 없다는 이유를 댄 것도 반독점법 제정에 속도를 더하게 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달 한국의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을 초청해 자본주의 국가인 한국의 독과점 규제와 대규모 기업집단(재벌) 정책 경험을 전수받기도 했다.

◆예상되는 파장=반독점법은 중국 시장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에 극약이 될 수도 있다. 컴퓨터 운영체계(OS).휴대전화.카메라.통신설비.감광재 분야에서 다국적 기업들이 중국 시장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이 반독점법의 1차 적용 대상이 될 공산이 크다.

통상 반독점법은 개별 기업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거나, 2개 기업이 시장의 3분의 2를, 3개 기업이 4분의 3을 차지할 때 독점으로 본다.

이런 기준에 따르면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MS)는 중국 OS 시장의 95%를 장악하고 있다. MS가 1차적인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 노키아(휴대전화), 코닥(감광재) 등도 표적이 될 공산이 높다.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의 반독점 규제가 자국 기업과 경쟁하는 다국적 기업을 견제하는 새로운 칼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고 분석한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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