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소녀가장 출신 유지원 원장 김용님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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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소년소녀 가장에게 '꿈을 갖고 노력하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메시지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오는 2월 원광대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는 전북 익산시 리라 자연유치원 김용님(金容任.46)원장. 그는 학교 사환 생활을 하면서 야간학교를 다니는 열정으로 온갖 어려움과 역경을 뚫고 꿈을 실현한 사람이다.

전북 김제 출신인 金원장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병석에 누워 있고, 어머니 혼자 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려 가야 했기 때문에 초등학생 때부터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해야 했다.

"엄마가 집에서 동생들을 돌보라고 했지만 저는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6년간 동생을 등에 업고 학교에 가 함께 수업을 받으면서 꼭 교사가 되겠다고 결심했어요."

초등학교 졸업 후에는 주경야독 생활이 이어졌다. 가정형편 때문에 정규학교를 포기하고 낮에는 이리공고의 사환으로 일하면서 야간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고교 졸업 무렵에는 어머니마저 별세했다.

"월세를 제때 못내 동생들을 이끌고 달동네를 헤맨 적이 많아요. 정말 당시는 떨어지는 빗방울 가릴 방 한칸만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고교 졸업 후 사환 생활을 7년간 더 하면서 동생들을 뒷바라지해 사업가.경찰관 등으로 키웠다.

金원장은 결혼과 함께 학업을 접었다가 1982년 야간대학 유아교육과에 입학해 공부를 계속했다. 그리고 전공을 살려 88년 유치원을 열었다.

원광대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뒤 96년 겸임교수로 서해대학 강단에 첫발을 디뎠으며, 3년 전부터는 원광보건대.방송대 등 3~4개 대학에도 시간강사로 출강하고 있다.

金원장이 이번에 쓴 박사학위 논문은 '생태학적 접근의 과학활동이 유아의 과학적 능력에 미치는 영향'. 좋은 교실에서 주입식 영재교육을 받은 아이들보다 자연 속에서 나무.흙을 만지며 자란 어린이들이 창의력이 높고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실험과 관찰을 통해 증명하는 내용이다.

金원장은 "어려서부터 논밭을 뛰어 다니며 고구마 캐고 이삭 줍던 경험이 내 인성을 풍부하게 해주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강인한 정신을 길러준 것 같다"며 "어린이들에게 자연만큼 좋은 교사는 없다"고 말했다.

전주=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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