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3주 이상 평양 부재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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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함경남도 단천 제련소를 시찰하고 있다. 북한의 중앙방송은 13일 "김 위원장이 인민군 제1286부대, 함흥영예군인수지일용품 공장을 시찰했다"면서 이 소식을 전했었다. 방송은 김 위원장의 정확한 방문 시기는 보도하지 않았다. 남측 조사단도 지난달 28일부터 15일까지 단천 지역에서 지하자원 실사 작업을 했다. 중앙방송 등 북한 언론은 이날 이후 김 위원장 동정을 보도하지 않았다.[연합뉴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례적으로 오랫동안 평양을 비우고 있는 것으로 파악돼 정보 당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북한 내부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19일 "김 위원장이 7월 말부터 3주 이상 함경도 지방에 체류 중"이라며 "평양으로 복귀했다는 아무런 징후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당국의 분석 결과 18일 현재 김 위원장이 함경도 지역에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이런 분석대로라면 김 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 연기 결정을 평양이 아닌 지방 체류 중에 내렸다는 의미가 된다. 그동안 김 위원장의 특정 지역 현지 지도는 통상 5~6일, 길어도 2주일을 넘은 적이 없었다는 게 정부 당국자의 전언이다.

김 위원장의 장기 출장은 북한 관영 매체의 보도로도 확인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26일 함흥 대극장에서의 러시아 무용단 공연 관람을 시작으로 지난주 중반까지 연일 김 위원장의 함경도 일정을 보도했다. 시찰 대상은 중화학 공장과 탄광 등 산업시설에 집중됐고 군부대도 이따금 들렀다. 북한 매체는 김 위원장의 동정 기사에 날짜를 쓰지 않는 것이 관행이지만, 이례적으로 무용 관람과 함주 대의원 선거 참관(7월 29일) 보도 때는 날짜를 밝혔다.

김 위원장은 왜 장기간 평양을 비우고 있는 것일까. 우선 남북 정상회담과 연관 짓는 분석이 있다. 대북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정상회담 때 현지지도 경험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얘기하면서 자연스레 대북 경협 요청과 광산 공동 개발 문제를 의제로 올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함남.북 일대가 북한에선 중화학 공업과 광산 시설이 집중된 지역이란 점이 그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북한 TV가 지난 주말까지 단천 제련소 방문 화면을 반복해 보도한 것도 이런 맥락이란 분석이다.

김 위원장이 여름 휴가차 현지 지도를 겸해 함경도에 머물렀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 당국자는 "김 위원장이 시설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흥남의 75호 휴양소를 한동안 숙소로 사용했다"며 "예년에도 휴가와 현지지도를 병행한 사례가 있다"고 전했다.

함경도 방문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일정이 3주에 이르도록 길어진 것은 수해와 관련이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장거리 이동 때 전용 열차를 이용하는 김 위원장이 예상치 못한 수해로 철로 곳곳이 유실되는 바람에 평양 귀환을 예정보다 늦출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항공기를 거의 이용하지 않고 안전한 이동 수단이 보장되지 않으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정보 관계자의 설명이다.

때마침 함남 단천을 방문했다가 수해를 만나 일주일 이상 현지에서 발이 묶였던 통일부 북한지하자원 조사단의 전언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18일 귀국한 조사단 관계자는 "평양과 함경도를 잇는 철도와 평양~원산 간 고속도로가 모두 마비됐다"며 "15일까지는 헬기도 띄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정보 당국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지금까지 수해 현장을 직접 방문하지는 않았다"며 "용천 열차 폭파 사고 때도 현장에서 복구를 독려한 적은 없었다"고 전했다.

예영준.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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