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교육이 필요한 이유(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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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들어 한자를 배우고 한자를 병용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삼성같은 대기업의 취직시험에서 큰비중을 차지하는 시험과목으로 등장하고 있다. 왜 갑자기 한자교육인가. 여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그 하나는 생활언어로서 한자는 우리 생활에 빼놓을 수 없다는 언어교육의 현실 반영이고,또 하나는 국제화시대의 흐름을 탄 한자문화권의 연대의식 강화라는 두가지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사실 우리는 오랫동안 한글 전용이라는 명분에 묶여 한자를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으면서 현실적으로 한자를 강요하는 이중언어구조속에 살아왔다. 현실은 한자 병용인데 교육은 한글전용에 치중해온 절름발이 교육이었다.
거리를 무단 횡단하던 노신사가 젊은 경찰의 단속대상이 되어 주민등록증을 제시한다. 성함이 뭐냐고 젊은 경찰이 윽박 지른다. 노신사는 주민등록증에 적혀있지 않느냐고 화를 낸다. 한자를 모르는 젊은 경찰과 이를 비웃는 노신사간의 웃지 못할 승강이가 바로 잘못된 우리 국어교육의 현주소다. 대학을 나와도 신문을 읽지 못하는 국어교육이라면 뭐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누구나 한글의 우수성을 자랑하고 민족의 긍지로 꼽고 있다. 한자를 배우자는게 한글의 우수성을 깎아내리고 민족의 긍지를 더럽히자는 의도가 전혀 아니다. 그런데도 한자 병용이면 문화사대주의자고 한글 전용이면 민족주의자가 된다. 이런 이분법적 잘못된 의식풍토가 국어교육의 경직성을 가져왔다.
우리말의 70%가 한자에서 유래됐다는 통계가 있다. 한자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우리말과 우리 글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글전용법에도 한자병용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있고 중·고교에서도 한자교육을 하게 되어 있다. 중·고교 기초한자를 1천8백개 상용한자로 규정했지만 제대로 가르치질 않았다. 중·고교 교과서에 한문교육이 필수과목으로 되어있지만 지난 6차 교육과정심의에서 그나마 있던 주당 1시간짜리 한문시간도 선택과목으로 밀려났다. 이를 다시 선택 아닌 필수로 환원하고 한자교육도 보다 철저하게 해야 한다.
이웃 일본이 1천9백45자의 한자교육을 국민교부터 철저하게 시킨다고 해서 한자교육이 필요한게 아니다. 한글전용만을 고집해왔던 북한마저 한자교육을 68년부터 부활해 1천5백 한자를 국민교부터 가르치고 있다. 제 나라말과 글을 제대로 이해하고 깨우치면서 한자의 탁월한 시각성 조어력·축약력을 빌려 언어체계를 다양화·활성화하자는 뜻일 것이다. 뿐인가. 동북아의 한·중·일이라는 유교한자권 문화간의 유대와 교류,그리고 교역이라는 국제화 시각에서도 한자의 생활화는 더욱 필요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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