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세계바둑오픈' '다음'이 없는 수는 싫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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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제8회 세계바둑오픈 준결승 제1국
[제2보 (23~40)]
白.朴永訓 5단 黑.謝 赫 5단

기훈에 이르기를 "어려울 때는 손빼라"고 했다. 우하를 어떻게 처리할까 장고하던 셰허5단이 짐짓 23,25로 전향한 것도 너무 어려워서다. '참고도' 흑1로 지켜두는 수는 사실 훌륭한 한수다. 그러나 백은 A로 안정하는 수가 있기 때문에 마음놓고 손을 돌려 백2로 파고들 것이다. 말하자면 흑1은 그 다음의 노림이 없는 수다. 프로들은 다음이 없는 수를 생리적으로 싫어한다.

하지만 26으로 뚝 끊어지자 역시 이곳도 아프기 짝이 없다. 축머리가 좋아 29로 한번 나갈 수는 있었지만 31이 불가피했고 결국 32의 장문으로 두점이 잡히고 말았다. 단지 두점이 아니다. 하변 백진이 생각보다 커졌다. 이 그림과 '참고도'를 비교하면 흑의 입장에선 어느 쪽이 나을까. 32까지의 결과를 놓고 검토실에선 흑이 약간 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바둑이란 꼭 산술적 계산만으로 두어지는 것은 아니다.

'참고도' 흑1은 노림이 없어서 프로의 감각으론 늘어진 듯한 느낌을 주는 수다. 그에 비해 실전의 흑25는 날카롭게 날을 세운 수다. 그러므로 프로들은 당연히 25의 감각을 선호하지만 막상 끊어지니 눈물나게 아프다. 바둑은 이래서 어렵다.

셰허는 하변을 불만스러운 눈으로 한번 쓸어보더니 33, 35로 눌러간다. 37때가 박영훈에겐 작은 갈림길. A로 이을 것인가, 38로 젖힐 것인가. 박영훈은 기세를 살려 38로 젖혔고 이렇게 되면 흑B로 막는 선수를 피할 수 없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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