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칼럼>국가기밀 지켜지고 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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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권력다툼이나 국가간 경쟁의 뒤안에는 언제나 치열한 첩보전이 전개된다.때문에 기밀 빼오기와 감추기는 그 국가나 조직의 총체적 관리능력을 나타내며 이따금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6共시절 盧泰愚대통령과 金泳三民自黨대표는 몇번이나 치열한첩보전으로 부딪쳤다.첫 대결은 3당 합당후 얼마 안된 90년4월 무렵.당시 盧대통령의 分身이나 다름없던 실세 朴哲彦정무장관이 『내가 입을 열기만 하면…』이라며 촉발하자 金대 표는 노란봉투를 들고 청와대로 盧대통령을 찾아갔다.그는 봉투 속의 문건을 꺼내놓고『나에게도 이런 공작정치를 하다니….난 길거리에 나가 국민들에게 맞아죽으면 죽었지 당신들 손에는 안죽는다』고 거칠게 항의했다.
YS가 내놓은 문건은 盧대통령이 며칠전 徐東權안기부장으로부터보고받고 盧在鳳비서실장에게 검토토록 건네준 이른바 YS無力化를위한 극비 공작 계획서였다.盧대통령은 金대표가 나간 후 주치의를 부를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徐안기부장은 대 통령 앞에서 낯을 못들 형편이 됐고,盧비서실장은 안기부의 내사를 받았다.청와대 참모들은 이 사건이 盧대통령으로 하여금 YS의 파괴력에 최초로 두려움을 갖게 했다고 회고한다.
반대로 YS가 盧대통령에게 당한 적도 있다.91년 여름 金대표는 휴가차 濟州에 내려가 연내에 자신을 民自黨대통령후보로 조기 지명해줄 것을 半공개리에 요구하는 시위를 했다.임기가 1년7개월이나 남아있는 시점에 정치 일정을 제기하는 행동은 삼가달라는 누차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YS가 이렇게 나오자 盧대통령도화가 났다.
盧대통령은 濟州에서 올라온 金대표를 불러 비밀문건 하나를 내놓았다.金대표 측근이 운영하던 연구소가 극비리에 만든 大選공약집.공약1호는「군사문화의 철저한 청산」이었다.
盧대통령은『벌써부터 이런 짓을 해도 되느냐』고 공박했고,YS는 측근을 불러『당장 美國에나 가라』고 노발대발했다.
金대표가 盧대통령에게 정보력을 은근히 과시한 적도 있었다.91년9월 무렵 청와대와 안기부는 金大中.李基澤간의 야권통합 작업을 체크하지 못하고 있었다.주례회동에서 YS로부터 그 사실을처음 알게 된 盧대통령은 안기부 관계자들을 문책 조치했다.金대표는『金大中을 나만큼 아는 사람은 없다』고 은근히 자랑했다.
6共의 기밀 유출은「물정부」소리를 들을만큼 심했다.당시 百潭寺에 유배중이던 全斗煥前대통령은 청와대와 안기부가 자신에 대해취한 유형.무형의 압력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延禧洞에 귀환하려는 全씨를 국외로 추방하려 했던「레만湖계획」.이를 안 全씨는 다른 섭섭함과 싸잡아 盧대통령에게 전화로 거칠게 항의하고 통화 내용을 녹음해두었다고 한다.
전.현직 국가 지도자들간의 이같은 첩보전은 정부의 핵심 기밀이나 정보가 公.私간의 동기에 의해 얼마나 손쉽게 새나가고 있는지를 알게 한다.동시에 우리의 국가 기밀이 국가안보보다 내부적 권력다툼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데 우려를 자아 내게 한다.
그같은 허점은 안보상의 기밀유출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청와대는 제임스 울시 美중앙정보국(CIA)국장의극비 방한이 신문 카메라에 잡힌 것을 계기로 保安문제에 극도로민감해있다고 한다.현역 장교가 日本특파원에게 군사기밀을 빼내주고,南北대화의 극비전략 과정이 야당의원에 의해 폭로되 는 정보누출현상을 청와대가 걱정하는 것은 이해할만 하다.
어떤 나라도 自國의 안전과 이익을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해 대외적으로 공표할 수 없는 기밀을 간직하게 마련이다.특히 안보.
외교관련 비밀,행정기관의 내부적 협의나 인사규칙,기업관계 비밀이나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선진국에서는 법으로 정보 공개 대상에서 엄격히 제외해놓고 있다.아울러 어떠한 것이 국가 기밀이고,누구에게 지켜야 하며,정보 공개와 언론자유의 형평에 관한 엄격한 잣대를 갖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의 국가기밀 관리는 원칙이나 능력면에서 아직 문제가 많은 듯하다.權力者의 편의에 의한 기밀의 남발과 誤用,기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6共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예사로 망명을 도모할 정도의 기강해이와 윤리不在 풍 토는 개탄스럽기조차 하다.
***알권리는 훼손안해야 文民정부의 기밀 관리가 국민의 알권리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6共의 허점과 亂脈을 극복하고 제자리를찾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무능하다」는 평은 듣지 않을 것이다. 「일은 비밀을 지킴으로써 이루어지고,謀議는 누설됨으로써 실패한다」는 韓非子의 가르침은 정보관리능력의 요체를 찌르는 名言이라고 할 수 있다.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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