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개발보다는 “경쟁력 강화”/수도권정책 다시 “U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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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입지·인력·정보 좋은 현실 수용/과밀자초,역작용 소지도 많아
수도권정비계획법 시행령 개정안은 수도권의 토지이용을 극대화하고 서울에서 대형건물의 신·증축을 무제한 허용하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지난 12년간 지켜온 「수도권 집중억제를 통한 지역균행개발」이라는 명분을 버리고 그 대신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수도권 집중 육성」이라는 현실과 효율에 규제완화의 정신을 가미했다고 볼 수 있다.
정부가 이처럼 수도권정책의 궤도를 급선회한 것은 나라안의 지역균형 개발보다는 세계무대에서의 국제경쟁력 강화가 발등의 불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우리 국토 가운데 그나마 가장 경쟁력을 갖춘 곳이 수도권인 만큼 우선 수도권이라도 키워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자는 의도다.
실제로 동북아권에서 서울을 동경·북경에 대응하는 국제도시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대형 및 복합건물의 신축을 허용,서울의 국제기능을 크게 강화해야 할 처지다.
또 여전히 수도권이 인력과 정보확보 등 기업활동에 가장 유리하다는 점에서 수도권에 공장 신·증설을 허용,제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것도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수도권의 개발 필요성과 이해관계자들의 압력이 커지고 있는 만큼 이같은 수요를 수용함으로써 기업들의 국제화 기반도 구축하자는 논리다.
수도권의 5개 권역을 3개 권역으로 통·폐합하면서 기존 규제지역중 상당수를 개발가능한 「성장관리권역」으로 편입,수도권의 가용토지를 지금까지 1천1백13평방㎞에서 5천8백10평방㎞로 5.2배나 늘린 것이 바로 이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결국 이번 조치로 수도권 전체면적의 50%가 대형 빌딩 및 공장 신·증축에 대한 각종 규제에서 벗어나게 됐다.
건설부 최재덕 수도권 계획과장은 『각 권역에서 규제가 합리적으로 조정,규제기준이 현실여건에 부합되고 투명해져 수도권 자체의 균형발전이 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기업의 국제경쟁력이 강화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대기업의 공장신설을 억제하는 등 산업입지를 총량으로 규제하고,4년제 대학의 신설·이전을 막아 우려되는 집중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도권 규제완화는 당장 경제활성화에 도움은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수도권의 과밀을 초래,과다집중에 따른 역기능도 가져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투자효과가 높은 수도권에만 개발력이 집중,지방과의 격차가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지방사람들의 공감과 이해를 얻어내는 일도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경쟁력 강화와 규제완화를 이유로 내세워 「당장의 효율과 현실」을 수용하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틀었지만 이같은 선택이 수도권 과다집중과 지역발전 불균형을 초래,장기적으로 되레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소지도 없지 않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교통혼잡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서울의 경우 96년까지는 연 평균 5조3천4백67억원,97년부터 2001년까지는 연평균 9조7천6백94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수도권의 면적은 전국토의 11.8%에 불과하나 인구는 44.1%,사업체는 57%,제조업체는 57.2%나 집중돼 있고 학교·의료기관·예금·자동차 보유대수 등은 50∼65% 가량이나 몰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도권에 대한 공장·대형건물·공공기관·택지·관광지·연수시설 등 인구와 산업을 집중시키는 각종 시설을 대폭 허용한다는 것은 현재 겪고 있는 문제들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국토개발연구원 박상우 연구위원은 『개정안은 수도권 집중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렇다고 현 시점에서 마냥 수도권 규제시책을 끌고 나갈 수 없는 만큼 다른 지역에 대한 균형발전계획을 세워 분산효과를 노려야 한다』고 제시했다.
따라서 입법예고 기간중 충분히 각계의 의견을 수렴,국제경쟁력을 위해 꼭 필요한 시설이라면 허용하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그동안 표류했던 수도권 정책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도성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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