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택대표 방북 구체화/“무산돼도 손해볼 것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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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남북 정상회담 성사전 선수” 추측/통일원 “우리 차원넘는 문제” 곤혹
은밀히 진행되던 이기택 민주당 대표의 방북문제가 공식화되고 있다.
이 대표의 기자회견과 북한 최고인민회의 양형섭의장의 환영담화로 은밀히 진행되던 그의 방북이 공개적인 논의과정에 들어선 것이다.
○…이 대표측은 처음 양형섭의 환영담화가 미칠 파장을 조심스럽게 검토,반응을 살피며 논평에 신중을 기했다. 국내 여론이 정지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이 환영하고 나서는 것은 역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외로 여론의 반작용이 크지 않은 것이 그를 상당히 고무한 것 같다.
또 이 대표가 이미 의사를 분명히 밝혀놓은 상태에서 정부나 김대중 전 민주당 대표 등이 이를 말릴 수도 없게 됐다고 분석하는 경향이다.
○「준비팀」 인선 착수
이 대표는 방북이 성사돼도 좋고,무산돼도 일정한 성과는 거두게 된다는 계산이다. 정부나 비주류측이 문제를 제기할 경우 「냉전적 사고」로 몰아가면 유리한 논쟁을 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이 대표는 이제 방북을 적극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분명히 잡은 것으로 보인다. 문희상 비서실장을 팀장으로 방북준비팀을 만들어 준비토록 하고 곧 통일원에 방북신청서를 낼 계획이다.
○DJ뜻 잘못 해석
이 대표쪽은 방북문제를 김대중씨측과 사전에 협의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때 김 전 대표측은 물가·UR 등 현안을 앞에 두고 있어 발표시점에만 이견이 있었지 방북 자체에는 긍정적이었다는 주장이다.
이 대표는 김대중씨외에도 지난 연말부터 통일원 관계자나 통일관련 전문가,당내 손세일·강창성의원 등으로부터 의견을 수렴해왔다고 한다.
또 이 대표가 회견에서 방북의지를 밝힌다는 사실이 정부측에 전해지자 서청원 정무1장관이 『중국에나 가시지 평양까지는 뭣하러 가시느냐』며 완곡하게 만류하는 뜻을 전해와 1차 정부입장을 비췄다고 한다.
그러나 김대중씨 측근들은 이 대표가 김대중씨의 완곡한 표현을 유리하게 해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대표가 방북을 서두르는 것은 북한과 미국의 협상이 급속도로 진행돼 불원간 남북 정상회담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선수를 뺏기면 안된다는 초조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통일원은 이 대표의 방북문제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통일원은 정부의 원칙이 『남북간 정치현안은 책임과 권한 있는 당국간의 논의에 따라야 한다』는 것일뿐 아니라 북한 핵문제로 쌍방관계가 경색돼 있는 마당이어서 이 대표의 방북이 적어도 통일원 차원에서는 쉽게 허락할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다.
○“쉽진 않을 것” 전망
그렇다고 야당 대표의 방북을 무턱대고 막다가는 「정부의 통일논의 독점」 「야당의 통일논의 봉쇄」라는 비난을 통일원이 뒤집어 쓰게 될 것이라는 고민도 하고 있다.
통일원의 한 고위당국자는 17일 『현재 이 대표의 방북을 허가할지 여부에 대한 정부방침은 아무 것도 결정된바 없다』면서 『이 대표측이 구두나 서면으로 방북절차 및 협조를 공식 제안해올 경우 관계부처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 허가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이 대표의 방북문제는 사안의 예민성을 고려할 때 성급하게 판단을 내릴 사안이 아니다』고 덧붙이면서 『이같은 정부의 입장은 사실상 이 대표의 방북이 쉽지만은 않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대표의 방북 논의와 맞물려 북한이 핵문제에서 투명성을 보이고 남북 당국간의 실질적 대화에 관심을 보일 경우 정부와 야당의 역할분담이라는 측면에서 이 대표의 방북이 적극 논의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김진국·안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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