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뇌 속을 손금 보듯 … 21. 토요일의 횡재 <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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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필자와 파루키 박사가 공동으로 발표한 비지오 관련 논문의 첫 페이지.

바로 다음날인 월요일 비지오를 보내줬던 하셔연구소의 파루키 박사에게 당장 전화를 했다. “파루키 박사, 놀라지 마. 비지오(BGO)의 성능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완전히 달라.” 그도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즉시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그 논문은 파루키 박사와 내 이름으로 1976년 핵의학 학술지에 발표됐다. 단 이틀간 실험으로 굉장한 대어를 낚은 셈이다. 이 논문은 핵의학 영상을 다루는 교과서나 논문 등에서 빠지지 않고 인용되는 유명한 자료가 됐다.

 과학자로서 논문 하나 잘 써도 그만한 영광이 없는데, 이 경우는 논문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몇 년 뒤 성능 평가가 끝나자마자 많은 연구소에서 PET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PET의 성능이 획기적으로 좋아진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지금 시판되고 있는 대다수 PET에는 비지오가 검출기로 쓰인다. 최근 LSO라는 새로운 검출기를 쓴 PET가 일부 판매되고 있다. 내가 비지오의 성능을 밝혀내지 않았으면 PET의 장래가 어떻게 됐을까. PET 자체가 사라졌을 수도 있다. 어느 교과서에 한 줄이나 비칠까 말까 할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을지 모를 일이다.

 나는 스웨덴 웁살라대에서 연수와 박사과정을 밟는 동안 교수가 모든 문제를 직접 확인하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대학원생이 어떤 실험 결과를 가져오면 교수가 일일이 다 확인했다. 워낙 살아 있는 연구를 직접 하다 보니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알고, 대학원생들이 실험하는 과정을 보지 않아도 결과를 가져오면 그들이 뭣을 했는지 교수들은 훤히 알았다. 싱 박사가 가져온 실험 결과를 그냥 믿은 게 내 실수였다. 처음 실험 결과를 가져왔을 때 내가 직접 해봤으면 좀 더 일찍 연구 성과가 빛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싱 박사는 비지오 성능 평가를 시킬 때 내가 한 말에 큰 영향을 받은 듯했다. 나는 그에게 실험을 지시하면서 “비지오의 성능이 그저 그럴 것이다”고 말했던 것이다. 어떻든 싱 박사 때문에 성과가 1년 정도 늦게 나오긴 했지만 그것이 남의 손에 넘어가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만약 누군가 나와 같은 방법으로 비지오를 실험해봤다면 금방 그 성능을 알아봤을 게 분명했다.

 비지오가 발표되자마자 워싱턴대 터 포고시안 교수 팀의 반격이 더 강해졌다. 비지오에서 그렇게 좋은 성능이 나올 리 없다는 것이었다. 도저히 못 믿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과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사람이 거짓말을 할 뿐이다. 터 포고시안 교수도 비지오를 테스트해본 뒤 내 논문이 맞다는 것을 알았다. 그 역시 80년대 초에는 비지오 PET를, 그것도 원형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초기에는 자신이 만든 PET와 내가 개발한 PET 중 어느 게 좋으냐는 논쟁에서 비지오 값이 비싼 것을 트집잡았다. 그런 고가의 비지오로 어떻게 PET를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비지오는 70년대 중반에는 다이아몬드에 버금갈 정도로 비싼 핵 검출기였다. 지금은 대량 생산 덕에 값이 상당히 싸졌다. 내가 논문을 발표한 뒤에도 학계에서 비지오의 성가를 인정받기까지는 몇 년이 걸렸다.

조장희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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