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된 야당을 기대한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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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기택 민주당 대표의 연두기자회견을 보면 정부가 귀담아 들을만한 내용이 많다. 가령 60년대에 짜인 정부기구를 새로운 환경과 필요에 따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급격한 개방화 흐름에 부응하지 못한 올해 예산의 재조정 문제 등은 정부도 경청해야 할 것이다. 또 국회를 빨리 열자는 요구와 이제는 지방단위의 경쟁력 강화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도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이 대표가 제시한 7대 정책목표를 민주당이 올해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주시코자 하며,구체적 내용 설명은 없는채 경제구조개혁,21세기형 교육·환경정책 수립 등으로 좋은 제목만 나열한듯한 7대 목표의 구체화를 기대하고자 한다.
다만 이 대표의 주장 가운데 물가안정을 강조하면서 공공요금의 동결을 요구한 대목이나 농축산물 개방에 관한 UR타결의 백지화를 요구한 것은 책임있는 야당으로서 취할만한 정책인지 얼른 수긍이 되지 않는다. 장기간 인상요인이 누적된 공공요금을 언제까지 동결만 하고 있을 수 있는가,규제완화와 경쟁을 통한 경쟁력 강화라는 것이 국제화시대의 불가피한 선택이라면 인위적인 가격동결만 주장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으로서는 쌀시장 개방저지가 당론인 만큼 논리적 일관성을 위해 UR협상의 백지화,국회비준 동의 반대를 밀고 나가야만 할지 모르나 대외적으로 맺은 협약의 백지화를 주장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그리고 지금 국민의 관심이 가장 집중되고 있는 경제문제에 관해 야당의 의견이 무엇인지 별 설명이 없는 것은 아쉽다. 급격한 개방화라는 새로운 환경을 맞아 정부의 경제정책이 옳은지,문제점은 무엇인지는 야당이 당연히 지적·비판해야 하고,필요한 대안을 내야 할텐데 회견에서는 별로 언급이 없었다.
대북정책에 있어 이 대표는 필요하다면 방북해 김일성주석을 만날 용의가 있다고 밝혔는데,우리는 그 충정은 높이 사면서도 그것이 북에 얕은 수를 쓰게 할 빌미가 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지금껏 보면 북은 우리 정부는 고의적으로 제치고 자기들 입맛에 맞는 사람을 선택적으로 누구는 부르고,누구는 안부르는 식의 태도를 보여왔다.
원래 비판은 하기 쉽고 대안을 내기는 어렵다. 더욱이 직접 국가를 경영하는 것은 더 어려울 것이다. 야당도 언제까지 야당만 한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평소 집권 가능성을 최대화해 나가면서 집권후의 대비도 해야 한다. 집권후 자기 말에 자기 발목이 잡힐 소리는 안한다는 성숙된 자세가 요구된다. 우리는 이번 이 대표의 연두회견을 보면서 야당 역시 올해가 민족사 진운의 갈림길이고,당면 최대 과제가 국제화시대의 대비라고 인식하고 있는데 대해 공감하면서 바로 이런 과제를 놓고 여당과 올 한해 치열한 방법론의 경쟁을 벌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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