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픈 전·현 대통령의 웃는 만남/김현일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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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91년 11월초,미국에서 날아든 한장의 사진은 우리 모두를 부끄럽고 우울하게 했었다.
부시 당시 미 대통령이 닉슨·포드·카터·레이건 등 4명의 전직 대통령과 한 행사에 참석,나란히 포즈를 취한 사진이었다. 그 행사는 캘리포니아주의 시비밸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있었던 레이건 전 대통령의 기념도서관 준공식이었다.
그때 중앙일보 워싱턴특파원은 전·현 대통령이 차례로 나서 이날의 주인인 레이건 전 대통령의 재임중 치적을 칭찬하는 장면을 감동적으로 타전했었다. 카터 전 대통령이 과거의 정적인 레이건을 기리고,부시 대통령이 당시 미국 외교의 가장 큰 업적이라 할 냉전종식의 주역은 레이건 대통령이라며 공을 돌리는 대목에서는 부러움이 넘치고 있었다.
3년여전,5공 청산이니 하여 전임 고관대작들이 줄줄이 단죄되는 것은 물론 퇴임 대통령이 궁벽진 절간으로 쫓겨가고 그도 모자라 국회청문회에 불려나와 증언을 해야하는 난리를 치렀던 우리네로서는 부러울 수 밖에 없었다.
그 역사는 5년후 그대로 반복,김영삼정부 출범후 함께 전임 고위공직자들이 연이어 구속되고 일부는 해외로 도주했으니 「91년 사진」에 대한 아쉬움은 오늘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 지금 김영삼대통령이 최규하·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10일 청와대로 초청,오찬을 함께 한다고 한다. 우리도 미국처럼 4명의 전·현직 대통령이 웃으며 만나는 사진을 구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청와대측은 공식적으로는 전·현직 대통령들이 신년인사를 나누는 식사모임이며 따라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이날의 4자회동이 여권내부는 물론 국민적 단합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또 아직도 5공청산 과정의 휴유증으로 반목을 거듭하고 있는 전·노 두사람의 자리배정을 어찌 하느냐를 두고 즐거운(?) 고민을 하고 있다.
이번 4자회동이 정치 10단의 김 대통령의 위상을 높이고 지도력을 강화시키는 계기도 된다면 전·노 두 전직 대통령에게는 정말 부끄럽고 안쓰러운 자리일 것이다. 대통령직까지 주고받은 30년 지기가 지척에 살며 이유야 어찌됐든 얼굴을 붉히고 상대를 비난하는 일은 후대를 위해서도 할 바가 아니지 않은가.
국회 원로로서 국정을 자문하기는 커녕 전경의 삼엄한 경비속에 지내야 하는 처지를 떨쳐버리고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도 깊이 생각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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