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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문 세배행렬(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조선조 정치사에서 권력장악의 양상과 관련해 수양대군과 흥선군 만큼 드러매틱한 모습을 보여준 예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권좌에 오르지 못했던들 수양은 임금의 동생으로서,흥선은 왕가의 파락호로서 평범한 일생을 보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난 후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평소 얕보고 비웃던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그들의 주변에 몰려 들어 교언영색으로 그들의 눈에 들려고 애썼다는 점이다. 평시에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명절 때만 되면 하객들이 장사진을 이뤘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당사자인 수양과 흥선은 물론 그들이 정권을 장악하는데 도움이 컸던 공신들에게도 똑같은 현상이 빚어졌다는 것이다. 「문턱이 닳는다」는 표현도 수양이 쿠데타에 성공한 이후부터 생겨났다고 전한다.
권력자들을 찾아가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려는 사람들의 목적이 권력에 빌붙어 뭔가 혜택을 보려는데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당장 중용되기를 바라지 않더라도 기회있을 때마다 찾아가 「눈도장」을 받음으로써 언젠가는 행운을 잡겠다는 계산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과 하례의 상관관계는 흥선의 경우 그가 한때 권좌에서 물러나자 갑자기 그를 찾는 발길이 뚝 그쳤다는 사실만으로도 쉽사리 입증된다. 일찍이 실학자 성호 이익은 정치권력에 있어서의 이같은 현상을 붕당정치의 요인으로 보았다. 어지간히 현명한 권력자가 아니라면 주변에서 자주 눈에 띄는 사람들을 기용하게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실인사에 치우쳐 파당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호의 그같은 이론은 현대정치에 있어서도 예외없이 적용된다. 신기하게도 권력의 크기 혹은 굵기와 찾아드는 손님의 수효는 언제나 정비례한다. 그것이 현실정치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그뿐 아니냐는 항변이 나올 법도 하지만 권력의 크기와 손님수의 함수관계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에 『정승 죽은데는 안가도 정승집 개 죽은데는 간다』는 우리 속담의 속뜻이 진하게 배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조선조의 세도정치가 국정을 피폐케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감안한다면 명절 때 실력자의 집을 드나드는 손님들의 잦은 발길은 아무래도 「문민정치」와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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