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례와 우상숭배(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부모에 대한 효도는 나라에 대한 충성과 함께 우리 민족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삶의 기본적 덕목이었다. 효는 모든 도덕규범의 기초를 이루기 때문에 부모가 살아계실 때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돌아가신 후에도 그 영혼을 엄숙하고 경건하게 모심으로써 자식된 도리를 다하는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살아계실 때도 예로써 섬기고,장례도 예로써 치르며,제사도 예로써 모시라』는 것이 효사상의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었다.
부모나 조상에 대한 제사는 인간이 죽은 후에도 그 영혼은 살아 현세로 돌아올 수 있다고 믿은데서 비롯됐다. 일종의 초혼 의식 범주에 넣을 수 있는 까닭에 종교적 의식과도 맥이 닿아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종교들이 인간의 영혼이나 사후의 세계를 믿는다는 점에서는 제사를 통한 조상숭배의 배경과 다를바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사라는 의식 그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보여왔다. 조상에 대한 제사를 단순히 우상숭배의 관점으로만 받아들일 때 제사의식은 여러 종교들이 신봉하는 유일신의 정신에 크게 어긋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종교가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 될 정도로 생활속에 깊숙이 파고들면서부터 전통적인 방법에 따라 제사를 모시려는 사람들의 입장과,그것을 우상숭배의 관점으로 받아들이려는 교인들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려왔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한 집안에서 그 두개의 입장이 맞부딪치는 경우다. 각기 다른 장소에서 제사와 예배 등 전혀 다른 방법으로 조상을 추모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한곳에서 따로따로 의식을 진행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최악의 경우에는 조상을 모시는 의식의 방법에 대한 견해차로 절연하는 사람들까지 있다니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인간의 영혼이 있고 사후의 세계가 존재한다면 자손들의 이같은 모습을 바라보는 조상들의 시선이 편치 않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때마침 한국 천주교는 전통관습을 대폭 수용한 「상·제례예식서」를 완성하고 전례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내년 봄 주교회의의 인준을 받아 시행키로 했다고 한다. 지방·위패 등을 허용하는 등 파격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다는데 제사의식을 둘러싼 집안의 갈등을 해소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