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향로(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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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달 별세한 삼불 김원룡선생은 평생을 무덤속 연구로 보냈다. 당신의 발굴작업중에서 가장 큰 업적이면서 가장 잘못된 발굴로 선생은 무령왕릉 발굴을 꼽고 있다. 71년 7월 단 한번도 도굴된 적이 없는 처녀무덤을 발견하게 된 그는 너무 기뻐 이 사실을 매스컴에 알리게 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관뚜껑을 빨리 열라는 압력을 가한다. 이에 그는 단 이틀만에 발굴작업을 서둘러 끝내게 된다. 이를 두고 그는 고고학자 최대의 여한이라하면서 당시의 졸속 발굴을 후학의 반성자료로 삼도록 했다.
지금 무령왕릉이래 최대 수확이라할 금동룡봉봉래산 향로가 발굴되어 당시의 충격과 흥분을 되살리고 있다. 사진만으로 봐도 그 섬세함과 세련미가 돋보이는 이 향로를 보면서 도저히 1천4백여년전의 공예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지금껏 우리에게 알려진 향로라면 중국 박산에서 출토된 박산 향로가 최고수준이라고들 말해왔지만 이번 능산리 향로에 비한다면 조악하기 이를데 없다. 일제시대 인사동에서 골동상을 하고 있던 이희섭이라는 사람이 20년대말 경도에 가서 조선공예 전람회를 열고 이어 도록 7권을 제작했다. 박산 향로라면 골동전문가들도 이 도록을 보면서 향로의 모습을 떠올리지만 이번 출토된 향로에 비한다면 그것은 비교가 안된다고 전문가들은 흥분하고 있다.
아마추어 눈에도 조형미와 기교가 그토록 뛰어난 작품을 6세기경의 우리 기술자가 만들 수 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기왕의 백제시대 출토품과는 비교가 안되는 이런 예술품이 이제서야 빛을 본다는게 안타깝고 아직도 우리는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예술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문외한이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 땅 전체가 우리 고유의 문화와 유적을 담고 있는 유물 유적의 보고이듯,우리 문화 우리 유적에 대한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연구가 있어야할 것이다. 그러나 문화체육부의 한해 예산중에서 고미술 수집비가 고작 1억원,1백여군데 발굴작업에 소요될 94년 전체 발굴예산은 10억원이다. 이래서야 어찌 우리 문화를 챙기고 연구할 계제가 될 수 있겠으며 백제문화권 전체에 관한 발굴과 조사작업이 유기적으로 진행될 수 있겠는가. 어느 문화유물이든 날림으로 된 것은 하나도 없다. 그저 우연과 날림으로 문화재를 찾아나서고 흥미본위로 발굴작업을 하게 된다면 이미 70년대 체험한 삼불의 여한을 아직도 되풀이하는 꼴밖에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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