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다리,안이한 행정(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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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19일밤 MBC­TV가 방영한 서울 한강대교 교각의 부식상태를 보고 놀랐던 시민들은 『당장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서울시 당국자의 태연함과 무책임성에 더 놀라고 있다. 신행주대교처럼 무너져 내려야 손을 쓸 작정인가.
한남대교의 교각들은 어느 곳이나 심하게 삭아 손으로 만지기만해도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갔고,아랫부분은 이미 콘크리트가 떨어져 철근이 드러나 있기도 했다. 더 섬뜩했던 것은 교각밀면 일부가 아예 수중에 들려있어 그 밑은 물고기들의 겨울잠 자리가 돼있었던 점이다. 이런 다리위로 매일 18만여대의 차량이 지나 다니고 있다니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사실을 서울시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신행주대교 붕괴사고때 한강의 다리들에 대한 안전검사를 실시해 한남대교를 비롯한 11개 교량이 부식돼 있음을 밝혀낸바 있다. 그랬다면 적어도 올해에는 보수공사를 했어야 했건만 서울시관계자의 말은 내년에 예산을 확보해 보수공사를 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공무원들의 이런 무신경과 무책임성이야말로 대형사고의 원인이다.
한남대교가 국민들을 놀라게 하고 있으나 실은 한남대교만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감사원이 지난 9월에 실시한 전국 1천2백28개 교량에 대한 관리실태 조사결과 55%가 안전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난바 있다. 경안교는 붕괴위험이 있다고 지적됐고,「자유의 다리」는 5개 교각중 2개가 수중에 들려있는게 밝혀지기도 했다. 이런 다리들에 대한 보수작업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공무원들이 늘 하는 소리는 「예산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예산없이는 보수공사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예산이란 우선순위의 조정을 통해 얼마든지 염출해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다리의 부식정도가 심해 보수공사가 시급하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면 다른 사업계획을 뒤로 미루고서라도 보수공사를 먼저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전문가들은 「시급히 보수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도 정작 전문가도 아닌 공무원들은 「아직은 괜찮다」는 안이한 인식을 하고 있는데 있다.
물위에 드러난 부분이 부식되어 있었더라면 벌써 보수공사를 했을 것이다. 물에 잠겨있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알고도 버려둔 것이다. 과시행정·겉발림 행정의 실태가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비단 서울시만이 아니다. 그동안 붕괴위험 등 안전에 이상이 있다고 지적된 교량들에 대해 건설부·철도청·지방정부 등은 보수공사를 서둘러야 한다. 붕괴로 인해 대형사고가 나면 그 복구비용과 신뢰에 대한 타격은 보수공사비와는 비교도 안되게 엄청날 것이다. 안전에 대한 투자야말로 가장 큰 이익이 남는 것임을 당국자들은 깨달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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