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산다>7.서울시 공무원서 山지기 변신 최종선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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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60이 멀지않은 나이에 걸맞지 않은 말간 얼굴,호리하고 꼬장한 체격의 崔鍾琁씨(55.충북단양군미노리)를 서울 한복판에서 만났을때 왠지「山냄새」가 나는 듯했다.
썰어말린 감조각과 농약없이 키웠다는 못생긴 사과를 꼬마배낭에서 꺼내주는 그를 따라 소백산 옆 한 능선에 위치한 촌가를 찾았을때 그의 山내음이 바로 생활의 내음임을 알게 됐다.
몇몇 민가를 뒤로 하고 잡목이 잎을 떨궈내 스산하게 누워있는산등성이를 헉헉이며 기어올랐을때 조립식 그의 집은 바람부는 능선에 홀로 버티고 서있었다.
앞뒤로 병풍처럼 둘러서 있는 산들,주인이 버리고 떠나 이미 오래전에 싸늘하게 식어버린 빈집 몇채가 멀리 그를 음산하게 할뿐 그의 주변에서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절경을 자랑하는 단양에서 다시 산과 내가 함께 달리는 길을 따라 골짜기를 찾아들었는데 그의 집은 해발 몇백m쯤 올라앉은 걸까.그는 그곳에서 생식을 하며 마치「구도자의 삶」을 사는 듯했다. 그러나 요란하게 다른 티를 내지 않는 그는 불과 20개월전만 해도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는 평범한 서울시민이었다.
한학을 주로 독학했다는 그는 지난 69년 서울시 지방공무원 신규채용시험에 합격,그동안 서울시청 행정과.운수과.가정복지과등에서 근무한후 지난해 3월 성북구청 국민운동과 지원과장을 끝으로 정년을 7년 앞둔채 명예퇴직했다.
『의미없이 반복되는 직장생활에서 보람을 찾기 힘들었어요.천성이 책을 좋아해 책을 원없이 읽고 싶었고 자연으로 돌아가 사는것이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이 자연스럽게 지향하는 순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소 병약해 주위의 권유로 85년부터 생식을 시작한후 잔병치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그는 이 생식을 위한 먹거리 준비를 위해서도 산속의 생활이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을하게됐다.그는 자신의 별스런 행위를 집어얘기하면「자연의 원리와문 명의 오류 탐구」쯤 된다고 했다.
마침 11년전 당시 전세방 한칸값인 1백80만원을 주고 조금사두었던 땅뙈기가 있는 이 산등성이로 직장을 그만둔 그다음달 올라왔고 조립식 주택은 금방 지었다.
쌀과 마른 콩등을 물에 불려 간후 솔잎,감 말린것,케일등을 반찬삼아 하루 한끼만 먹는 그는 이미 산등성이에 농사를 지어 자신의 먹거리를 한방 가득 준비해 놓았다.
이제 겨울의 적막이 감도는 그의 하루는 고추.곶감.땅콩.고구마등을 힘이 빠진 햇살에 말리는 일이었다.웬만한 사람같으면 싸한 외로움에 한나절도 견디지 못해 내려왔을 그곳에서 그는 낮이면 꿩을 벗삼아 호미질을 하고 저녁이면「써먹을 데 가 없을 것」같은 문학이나 철학.종교니 하는 책들을 읽고 이미 두권의 책을 펴냈다.
崔下라는 필명으로 낸 책은『자연식.생식.자연요법』『21세기의지식.사상.윤리-학문의 정상은 높지않다』등이 그것.
그는 자신의 생식관련책에서『이세상에 흔한 식물이 가장 좋은 약이며 대자연이 질병치료의 원리를 제공하고 있어 자연식이 모든질병의 치료약』임을 밝히고 있다.또 그는『21세기…』에서「서양철학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자연농법과 과학농 법」등을 자기생각대로 밝혀 그 수준을 따지기에 앞서 지식탐구에 대한 그의 열정을 느끼게 한다.
그는 남이 버리고 간 땅까지 무공해 농사를 지어 올해 사과 1백상자를 수확,주스공장에 팔았다고 자랑했다.모든 농사에 농약을 쓰지 않아 그가 내놓은 사과는 연탄아궁이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거무튀튀했다.그러나 맛은 맑고 달았다.
『적막하다든가 외롭다든가 하는 감정은 시간이 해결해줍니다.그건 이곳에 살면 사람에의 관심이 자연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가능해져요.깊은 사색을 많이 하게되는데 가끔 자극을 받기위해 서울도 가고 라디오.신문을 접하기도 합니다.』 정신과 몸 어느 구석에도 기름끼가 느껴지지 않는 그는 1㎞정도 떨어진 산밑 마을사람들과는 1년에 3~4번 명절때등에 어울린다고 했다.
역시 남편따라 생식을 하게된 그의 아내는 고3짜리 딸을 돌보는 틈틈이 자원봉사를 하며 서울반포동 개인주택에서 살고 있는데남편과는 이곳을 오가며 한달에 두세차례 만나고 있다.내년에 합류할 계획.
『늙어 죽을 때까지 맑은 정신으로 살고 싶습니다.육식을 하지않고 이런 생활을 계속하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요.』 그는 앞으로 인간의 역사.본질을 담은 역사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했다. 〈高惠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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