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 쌀협상 스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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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허 장관 “마지막 정상정복이 힘든 법”/한­미 협상장소 한국기자 출입통제/야 의원 “예외없는 관세화 왜 인정못하나” 맹공
허신행 농림수산부장관은 8일 새벽(한국시간) 미키 캔터 미 무역대표부 대표와 40여분동안 만난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등산에서 마지막 정상정복이 힘들듯 한계선상에서 우리의 것을 얻어내기가 참으로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협상은 벽돌쌓기와는 달리 마지막 하나 때문에 결렬될 수도 있다』면서 『최소시장 접근을 연기하거나 막는 일이 중요하다』고 밝혀 「쌀수입 동결기간」을 놓고 막바지 절충을 벌이고 있음을 시사했다.
○“농촌 이해해달라”
○…허­캔터의 40분간 회동은 서로의 고충을 토로하며 이해를 구하는데서부터 시작.
허 장관은 캔터 대표를 만나자마자 『미­EC(유럽공동체) 협상이 타결된 것을 축하한다』고 운을 뗀뒤 『한국 농촌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해달라』고 호소하는 정공법을 사용.
이에 캔터 대표는 『개인적으로 한국을 도와주고 싶으나 여러나라 형편을 들어줄 수 없는 우리 사정도 딱하다. 한국은 모범국가로 성장했으니 제발 우리를 좀 도와달라』고 오히려 부탁.
○출입자 일일이 통제
○…미국측은 한미 협상장소인 미 무역대표부에 약속보다 10분 일직 나온 한국측 일행을 5분 가까이 엘레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게 하는 등 결례를 보이기도.
또 한미측은 캔터 대표가 브뤼셀에서 EC와의 협상을 막 끝내고 돌아와 서덜랜드 GATT 사무총장과 회담을 하기 때문인지 대표부 출입차들이 일일이 통제.
미국측은 특히 무역대표부 건물안의 한국기자들에게 건물밖에서 기다려줄 것을 요구해 많은 기자들이 회담이 끝날 때까지 추위에 떨며 기다려야 했다.
○야 의원 기자간담회
○…7일 오전(한국시간) 제네바에 온 김영진(민주)·조일현(국민)·정태영(민주)의원 등 농촌출신 의원 3명은 미리 와있던 조순승의원(민주)와 함께 제네바 시내 한식집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협상대표단을 신랄히 비판.
한 의원은 『쌀시장 개방문제를 여당은 공천확보,정부는 정권유지,장관은 자기보신 차원에서 접근하다보니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것은 뻔한 일』이라며 『예외없는 관세화를 사실상 포기했으면서도 이를 인정하려들지 않는 대표단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맹공. 그는 『쌀시장 개방 자체의 부인은 과거 정부가 인민군이 한강을 넘어오는데도 격퇴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해 많은 사람이 희생당한 것과 똑같은 것』이라고 흥분.
○…허 장관은 제네바로 오기 앞서 한미 대사관을 통해 캔터 대표와 에스피 농무장관에 대한 자료를 수집,성격과 특성 등을 면밀히 「공부」했다는 후문.
때문에 허 장관은 유창한 영어를 바탕으로 친밀한 분위기속에서 협상을 진행시킬 수 있었다는데 제네바대표부 관계자의 설명.
○…제네바 도심의 GATT 본부에서 가장 활발한 취재를 하는 나라는 쌀개방 문제로 고심하고 있는 일본.
특히 일본이 방송사 기자들은 돈많은 나라답게 현지인들을 고용,휴대폰까지 동원해가며 각국 협상대표들이 묵고 있는 호텔로 옮겨 다니며 전천후 취재.
이들은 허 장관이 식사하는 자리까지 찾아와 한국의 쌀협상 진전을 취재하고 있는데 한 기자는 허 장관이 『일본정부가 쌀시장 개방을 발표했느냐』고 묻자 『개방이 아니다』고 부인.<제네바=박의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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