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빨리 「쌀」을 논의하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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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회 날치기파동은 여야 모두 패자로 만들었다. 국민에게 누를 끼치고 멸시를 자초했다. 그러나 그런 과오때문에 할 일을 하지 않고 서로 책임이나 미루며 국회를 오래 공전시킨다면 그것은 또 한번의 큰 과오가 될 것이다.
우리는 격돌끝에 여야가 서로 감정이 악화되고 대화할 기분이 별로 나지 않을 것임은 짐작되지만 급박한 국내외 형편을 생각하면 하루빨리 국회를 정상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쌀문제는 마치 물이 코밑까지 찰랑찰랑 하는 것처럼 절박하다. 국민의 이목은 온통 여기에 쏠려있고,농민은 물론 많은 국민들이 걱정하고 궁금해하고 애태우고 있다. 이런 국민심정을 누가 대변할 것인가. 바로 여야 국회의원이 해야 하고 국회가 그 중심무대가 돼야 한다.
더욱이 정부는 이런 절실한 국민심정은 아랑곳없이 쌀문제에 관한 입장도 분명히 밝히지 않고,협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충분한 정보공개도 하지 않고 있다. 또 불행히도 개방을 안할 수 없을 경우 어떤 대책이 있는지도 국민은 모르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쌀시장 고수를 위해 막바지 협상을 벌인다고 농림수산부장관을 보냈지만 그것이 행차뒤의 나발이 되고 있다는 의심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말 협상을 하는 것인지 「면피용」인지 아리송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 정부를 닥달하고,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주고,정부의 허점을 지적·보완하는 노력을 정치권은 국회에서 시급히하지 않으면 안된다. 쌀협상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쌀문제에 관한 대미 사전 밀약설은 사실인지,쌀에 관한 정부의 진의는 무엇인지… 국회가 따질 일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또 개방불가피로 결론이 날 경우 그 사후책을 정부에만 맡겨둬서도 안된다. 국회가 사후책의 내용을 보고받고 수정·보완·강화하는 노력을 보여야 국민이 안심할 수 있다.
쌀문제뿐 아니라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정세도 급박하게 돌아가는 분위기다. 미국이 사찰수용이냐,제재냐를 택일하도록 북한에 최후통첩을 했다는 소식이다. 국회가 이런 소식에 가만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사전에 우리 정부와 협의가 있었는지,북한이 강경으로 나올 경우 우리의 대비책은 무엇인지 국회는 알아보고 따지고 국민에게 알려줄 의무가 있는 것이다. 핵문제 역시 따질 시간도 별로 없다.
이처럼 쌀이나 핵이나 긴박하게 다뤄야 할 문제들이 코앞에 있는데도 국회가 낮잠이나 자고 있어서는 안된다. 쌀과 핵문제는 여야가 그렇게 머리가 터지도록 다툰 안기부법의 몇개 조항이나 추곡수매문제보다도 훨씬 중요하고 큰 문제다. 빨리 국회가 챙기고,국민에게 알릴 것은 알려야 한다. 국회가 이런 성실한 노력을 보여야 날치기 파동으로 잃은 점수를 회복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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