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한국축구유감>上.감독 흔들기 너무 심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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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한국이 낳은 세계적 스타 플레이어였던 車範根현대축구단감독(42)이 올시즌으로 프로 지도자생활 3년을 보냈다.
독일 분데스리가 10년을 청산하고 귀국,91년 현대와 3년 계약을 체결하면서 「3년내에 팀을 우승시키겠다」는 약속을 했던車감독은 결과적으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계약기간을 마쳤다.
현대와의 재계약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車감독이 프로팀 감독으로서 그동안 한국 축구에 대해 느낀 바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註] 감독생활 3년.
우승 한번 못해보고 말 그대로 죽어라 고생만 했다.
화도 나고 같이 고생한 코칭 스태프나 선수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3년이면 내가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었다. 이제야 선수들이 내 손안에 들어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겠고 선수들도 역시 감독의 지겨운 잔소리가 더러는 약도 된다는것을 깨닫는 모양이니 걷기 위한 준비기간은 반드시 있는 것같다. 감독은 어렵고 고독한 직업이다.
나이들어 선수생활을 끝내려고 할때 독일의 감독이『차,뭐하러 은퇴하려고 해.
선수생활이 제일 좋아』라면서 나를 붙들었었다.
그러나 나는 별로 귀담아 듣지 않았었다.
지금 나는 우리팀의 노장 선수들에게 진심으로 같은 말을 하고있다.어떻게 보면 아이로니컬하기만 하다.
가끔 신문에서 보는 감독들의 코멘트가 참 걸작이다.
농구감독 申東坡씨는『이기기만 한다면 감독보다 더 좋은 직업이없다』고 했다.
그렇다.
천신만고 끝에 경기를 이기고 나면『마약을 복용하면 이같이 좋길래 신세를 망쳐가며 하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황홀해진다. 또 프로야구의 金應龍감독은 93한국시리즈를 우승하고 나서 『먹고 살 것만 있다면 그만두고 싶은 직업』이라고 했다.
그만큼 피를 말리는 긴장감을 이겨내야 한다.
그러나 감독들이 이겨내야하는 것은「승과 패」그것뿐이 아니다.
나같은 경우 비교적 온실속에서 감독생활을 해온 셈이지만 시즌만 끝나면 갈아치울 것처럼 떠들고 다니다가 막상「대안이 없다」며 감독의 계약을 연장하는 구단을 볼때면 남의 일이지만 화가 나서『말이나 말지』라고 한마디 쏘아붙이게 된다.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전이 끝나고 축구협회는 2주일 이상 金浩감독을 갈아치울 것처럼 소란을 피웠다.
그야말로 대안도 없이 무조건 흔드는 꼴이었다.축구인들도 구경거리 났다는듯이 호기심을 잔뜩 세웠다.그러나 김호감독은 다시 유임되었다.
얼마나 시간 낭비며 어처구니 없는 소동이었는가.
역대 대표팀 감독치고 마음 편하게 선수들을 지도해본 적이 없는게 현실이다.
축구인들이여,「무쇠라도 녹이는 것이 축구인의 입」이라는 말이무색하도록 우리 모두 반성하고 축구를 위해 한데 뭉쳐보자.
적어도 감독이라는 일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만이라도 그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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