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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출신 선원들 "어민도 북파공작에 동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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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특수부대원뿐 아니라 어부들도 1960년대 북파공작에 동원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박장순(68.부산 거주)씨 등 경남 통영 출신 어민 4명은 15일 "해군 지령에 따라 66년 5월 서해 북방한계선을 넘어 조업 중 북한에 나포됐다가 9월 13일 돌아온 뒤 북한에서 보고 들은 것을 미군 등에게 상세히 보고했다"고 말했다.

당시 위장 납북된 어부는 모두 8명으로, 朴씨와 백평조(76.경남 통영).박경열(77.경남 하동).정정웅(64.경남 마산)씨 등 4명은 생존해 있으며 나머지 4명은 작고했다.

이들에 따르면 65년 12월 말 해군 방첩부대장이던 李모(사망)소령이 고향이 같은 白씨를 찾아와 "위장 납북돼 건물 위치 등 북에서 보고 들은 것을 상세히 알려주면 보수를 주겠다"고 제의했다. 白씨는 그가 마련한 북파어선(순평호) 선장을 맡기로 약속을 했고, 李소령과 함께 선원 7명을 모집했다고 한다.

白씨는 3개월간 부산의 미군 하얄리아 부대에서 관찰력과 기억력 훈련 등을 받았고, 박경열씨도 李소령에게서 백평조씨 감시 등의 지시를 받고 1주일간 하얄리아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순평호를 타고 66년 3월 말 욕지도를 출발, 연평도까지 갔다가 5월 14일 오전 1시쯤 李소령에게서 침투 지시를 받고 북방한계선을 넘었다.

이어 오전 4시쯤 북한경비정에 나포돼 평양 국제호텔로 옮겨져 월북 경위 등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 이들은 "고기를 잡으러 왔을 뿐이다. 집으로 보내달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져 66년 9월 13일 모두 돌아왔다고 주장했다. 북한에 있는 동안 제철소와 모란봉 등도 둘러보았다는 것이다.

귀환한 뒤 白씨는 2개월간 부산호텔에 감금돼 미군 등에게 북한에서 보고 들은 것을 보고했고, 다른 7명도 경찰 등에서 조사를 받았다. 박장순씨는 "월북 대가로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납북송환자 명단에 올라 감시를 받고 친척들까지 신원조회에 걸려 취직을 못하는 등 피해를 보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증언 외에 아무런 증거가 없어 보상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다가 지난해 12월 말 白씨를 담당했던 경남경찰국 대공과 형사 출신 李모(67)씨가 각서와 진술서를 써주며 법정진술도 해 줄 수 있다고 약속함에 따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 중이다.

李씨는 진술서에서 "대공과를 찾아온 군 정보사 李모 소령에게서 '백평조씨와 선원 8명은 납북되었다가 귀환한 어부로 조사받은 바 있으나 사실은 유공자이니 잘 봐달라'는 말과, 해군 소속 다른 李모 소령에게서 '교육을 받고 위장납북되었다가 귀환했는데 정보를 수집해 온 공로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에 앞서 지난해 2월 경남경찰청에 '어민들이 북파 공작원으로 동원된 서류를 열람하고 싶다'는 민원을 제기했다가 '관련서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부산=강진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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