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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강 고수에 전력(선진교육개혁: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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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의 일본 따라잡기 열기/우수학생엔 엄청난 투자/“창의력 해친다” 암기식 교재 판금/“교육질 낮으면 저질근로자만 양산”
미국은 다음세기에도 세계 최강으로 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국제경쟁력면에서 다른 선진국,특히 일본에 밀리기 시작한 미국이 거국적인 「교육개혁」을 부르짖기 시작한지 올해로 꼭 10년째. 역대 대통령들은 「위기에 처한 국가」(83년·레이건),「미국 2000」(91년·부시),「2000년대를 향한 교육목표」(93년·클린턴) 등이 교육개혁을 차례로 내놓았다. 한결같이 『질낮은 교육이 질낮은 근로자를 배출하기 때문에 세계시장에서 밀리고 있다』는 위기감을 담고 있다.
미국인들은 지금의 상황을 『57년 구 소련이 스푸트니크호(유인우주선)를 발사했을 때보다 훨씬 심각한 위기』라고 서슴지 않고 말한다.
일본교육에 대한 미국의 경계심은 특히 두드러진다. 연방교육부의 올해 자료에 따르면 만 25세에서 64세까지의 미국인중 대학이상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은 23.6%로 동년배 일본인(13.3%)보다 수준이 높다.
그러나 25세에서 34세 사이의 젊은 미국인 남자중 23.5%가 고등교육을 받은데 비해 같은 나이대의 일본인 남자는 34.2%로 학력이 월등하다. 미국이 제자리걸음하는 사이 일본은 2차대전 참패후 그동안 2세교육에 더 정성을 쏟았다는 증거다.
『그런데도 우리 학생들의 연간 수업일수는 1백80일에 불과하다.
일본학생은 2백20일을 공부한다』는 것이 그들의 걱정이다.
지난달 11일 취재팀이 찾은 LA교육구의 그라나다 힐스 고교. 일반고등학교지만 소수의 청각장애학생들도 함께 받아들여 특수교육을 잘 실시하는 곳으로 이름난 학교다. 여기에서도 미국교육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학교 복도 곳곳에는 「교내에서 총이나 칼을(누가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까? 인명을 구하려면 누군가에게 신고하세요」라고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다. 「교내에서는 모자를 쓰지 마시오」라는 문구도 보인다. 갱단과 관련있는 불량학생들이 똑같은 모자를 표시삼아 쓰고 다니기 때문에 아예 착용을 금지했다. 개인의 권리를 먼저 생각하는 미국이기에 이 정도 규제를 택하는데도 진통이 컸다고 한다. LA교육구의 학교·경찰당국이 총기를 학교·경찰당국이 총기를 교내에 반입하는 학생을 무조건 퇴학시키기로 결정한 것도 이번 새학기(미국은 가을에 새학기가 시작된다)부터였다. 다른 대도시지역도 마찬가지. 뉴욕시의 학교들은 지난 한햇동안 학생들이 갖고 있던 흉기류 3천7백33점을 압수했다. 이중 리벌버 권총만도 1백23정. 놀런 라몬 코티네스 교육감은 『교문에 금속탐지기를 설치하는 학교를 현재 41개 학교에서 60개 학교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한 국민학교는 「남학생은 귀걸이를 해선 안된다」는 교칙을 올들어 새로 정했다(미국에서는 할아버지가 귀걸이를 하고 다니는 모습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학교부근 갱단이 한쪽 귀에만 귀걸이를 하고 다니는 패션을 즐기기 때문에 어린이들의 안전을 걱정해 금지시킨 것이다. LA교육구가 지난해 4월부터 올 4월까지 1년간 관내 49개 고교생들에게 나눠준 피임기구(콘돔)는 총 3만개로 집계됐다. 학생 4명당 1개꼴로 피임기구를 가져간 셈이다.
학생들에게 향학열을 불어넣는 방법도 우리와 다르다.
○개인권리 일부 제한
그라나다 힐스 고교에는 「학력과 월급」이란 제목아래 공식통계를 인용한 포스터가 붙어 있다.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사람의 월수입은 평균 3천8백55달러,석사학위는 2천8백22달러,학사학위는 2천1백16달러,직업교육을 이수한 사람은 1천2백37달러,고등학교만 졸업한 이는 1천77달러,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사람은 4백92달러」­. 철저히 경제적인 가치로 환산한 미국식 권학문인 셈이다.
그러나 거대하고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미국교육을 이 정도의 견문만으로 얕보는 것은 큰 착각이다. 같은 공립학교라 해도 취재팀이 방문했던 명문 스타이브센트 고교(뉴욕시)는 물리·화학·생물 실험실을 각각 4개씩이나 갖추고 있다. 부시 전 대통령의 모교이기도 한 매사추세츠주의 사립 필립스 앤도버 고교는 캠퍼스 넓이가 무려 5백에이커(61만여평). 사방 10마일(16㎞)까지 들리는 교내 라디오방송국이 학생 자치로 운영되는 이 학교는 학생들간의 사소한 폭력행사에도 처음엔 근신,두번째는 여지없이 퇴학이다.
고등교육으로 올라갈수록 학생·교수진의 상호 경쟁은 더욱 치열하다. 세계 제1이라는 MIT대 강의는 「소화전에 입대고 물먹기」로 비유되고 있다.
수압에 밀려 나가 떨어지는 학생은 아무도 동정하지 않는다. 교수사회도 철저한 적자생존의 원칙아래 움직인다.
○학급당 31명 “과밀”
7년 이상 열심히 강의하고도 종신고용(테뉴어) 자격심사에서 탈락하면 용달차에 책보따리를 싣고 군말없이 캠퍼스를 떠나야 한다.
미국을 이끌 영재들에게는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투자를 한다. 고등학교도 성적이 뛰어나면 대학생 수준의 강의(AP과목)를 선택해 들을 수 있다.
AP과목을 몇개 이수했는지가 대학의 입학사정에도 반영된다. 학생 1인당으로 비교할 때 미국의 교육환경은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LA교육구에 속하는 샌타애나지역의 공립학교는 학급당 평균 학생수가 31.4명인 것으로 밝혀지자 「지독한 과밀학급」이라는 여론이 빗발쳤을 정도다.
이같은 엄청난 투자에도 불구하고 미국 고교생의 SAT(우리의 대입수학능력시험) 성적중 어휘력점수는 72년 평균 4백53점에서 꾸준한 하락세를 보이다 지난해엔 4백23점을 기록했다. 교육당국자들은 『학생들의 수학·과학실력이 한국같은 개발도상국보다 훨씬 처지고 있다』고 개탄하고 있다.
○늦더라도 원칙고수
이 때문에 부시 전 대통령은 91년 발표한 교육개혁목표 6개항에 「2000년까지 과학·수학과목에서 세계 제일이 된다」는 대목을 우선적으로 포함시켰다.
거대국가 미국은 그러나 중앙집권적 통치에 익숙한 한국인의 눈에는 답답할 정도로 동작이 굼떠 보였다. 미국 교육은 어디까지나 주정부의 권한과 책임아래 놓여있기 때문에 연방정부의 정책 권고는 다시 지방차원의 논의를 거쳐야 한다. 그래서 구체적 개혁방법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주마다 한창이다.
지난 2일 캘리포니아주에서는 교육개혁안의 쟁점중 하나인 학교 자유선택권을 놓고 주민투표가 시행됐으나 부결됐다.
사립학교에 입학하려는 학생에게 1인당 연간 2천6백만달러의 보조금을 주어 공립학교들도 정신차리게 하자는 방안이었지만 「공립교육의 근간을 뒤흔든다」는 염려가 더 커 빛을 보지 못한 것이다.
이런 진통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자유경쟁과 창의력 제고에 바탕을 둔 미국 교육은 우리에게 여전히 시사점이 크다.
다분히 「한국식」인 암기위주의 수학교재가 올해초 개발돼 한때 인기를 끌었지만 교육당국은 『창의력을 해친다』는 이유로 가차없이 판매·사용을 금지했다. 「늦게 가더라도 창의력을 우선한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미국의 교육은 여전히 세계 일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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