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미래로」의 경제(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한국경제가 살 길은 밖으로,그리고 앞으로 나가는 것 밖에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사실 그렇다. 전반적인 국내 경기의 위축을 의식하고 있는 정부는 8일 김영삼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신경제 국제화전략에 관한 세부 추진대책을 마련하는 회의를 열었다.
우리는 이번 회의를 계기로 정부가 사정과 개혁명분을 의식하여 지나치게 과거지향적인 경제운용에서 탈피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국제화라는 것이 행사를 크게 하거나 구호를 외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조용히 내실있는 정책의 추진에 힘써주기를 아울러 주문한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외국인투자를 지난 시절의 외세에 의한 경제침략의 현대판으로 오해하는 풍조가 남아있다. 외국인 기업에서의 노사분규는 애국적인 행위로 묘사되고,여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외국기업이 한국내의 기업경영을 위해 토지를 구하려해도 각종 규제가 복잡하고 임금도 상대적으로 싸지 않은 반면 각종 사회간접자본시설은 포화상태에 있다.
결과적으로 지난해말 현재 우리나라에는 총 9억달러의 외국인투자가 행해진 반면 우리를 바싹 추격하고 있는 중국에는 모두 5백81억달러나 투자되었다. 우리는 다른 경쟁국에 비해 임금이나 금리면에서 다소 불리한 환경이지만 다른나라가 갖지 못한 장점도 많다.
지정학적으로 우리의 위치가 점점 더 동북아의 중심으로 바뀌고 있고,중국과 러시아라는 방대한 잠재시장을 배후기지로 갖고 있다. 다른 개도국이 갖지 못한 중급 기술과 잘 훈련된 인력이 있고,사회간잡자본도 조금만 손을 보면 얼마든지 경쟁력이 있다.
우리의 수출은 가격경쟁력에 의존하는 구태의연한 전략이 한계에 부닥쳐 선진국 주력시장을 급속히 일어왔다. 기업도 팔 물건이 마땅치 않은 것을 알고 있으나 품질의 고급화나 신제품 개발은 원하는 만큼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의 수출은 전환기적인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정부 각 부처가 제시한 몇가지 규제완화 중심의 대책으로는 이 난관을 뚫고 나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우리는 김 대통령과 경제팀들이 국제화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환기시키는 노력을 환영한다. 일련의 정상회담과 APEC에서의 적극적인 역할분담을 통해 새로운 계기를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과 전반적인 경제운용이 별개의 노력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즉 정부는 기업이 안심하고 적극적으로 일을 벌일 수 있도록 투자분위기를 빨리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국면전환을 바란다면 다소 정치적인 대가를 치르더라도 새 분위기 조성에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무리 명분과 구호가 좋아도 경제가 나빠지면 국민들이 정부에 등을 돌리기 쉽다는 것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