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카와/“이웃끼리 먼저 만나자”/한­일 정상회담 성사 뒷얘기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장소싸고 이견 한때 무산될뻔/골프·테니스 하지 않고 산책만
한일 양국의 정상외교가 형식을 뛰어넘어 내용을 중시하는 형태로 변화되고 있다.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 일본 총리가 6일 「실무방문」 형식으로 경주에서 오게 된 것이다.
이번 방문이 눈길을 끄는 것은 두 정상의 만남이 매우 자유스럽다는 점이다.
국빈방문의 어마어마한 행사나 딱딱한 공동성명이 없는 것이나 수도 서울을 피해 조용한 고도 경주에서 만나는 것도 이색적이다.
한일간의 외교가 선진국형으로 한 차원 높아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지난 9월 한일 외무장관은 11월 미 시애틀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APEC) 지도자회의때 별도로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키로 합의했다.
그러나 호소카와 총리가 10월초 『인접한 한일 양국 수뇌가 제3국에서 첫대면한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한국방문의사를 먼저 밝혀옴으로써 그의 방한이 추진됐다.
김영삼대통령도 『우정어린 대화를 나누고 싶다』며 원칙적인 동의를 표시했으나 일본측이 회담장소를 제주 등 「지방」을 고집,최종합의가 지연됐다.
한국측은 처음 한국을 찾는 외국정상이 지방도시를 방문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고 일본측은 이번은 한국 정상이 일본을 방문할 차례인 만큼 서울은 어렵다며 난색을 표시했다.
수도 서울이 지니는 상징성에 우리가 집착하고 있는 것만큼 일본측도 그 반대의 이유에서 서울회담을 극구 반대했다. 이같은 명분다툼으로 한때 이번 정상회담이 무산될뻔 하기도 했다.
양국 정상회담 일지를 보면 92년 11월 노태우대통령의 교토 방문이 공식방문이 아닌 실무방문이었다는 사실이 두나라 협상의 숨통을 터주었다.
호소카와 총리의 이번 방한은 노 대통령의 실무 방일에 대응하는 것으로 양해가 이뤄졌다.
일단 지방도시로 결정이 된후 경주와 부여가 그 대상지로 거론됐으나 교통·숙박시설 등을 두루 고려,경주로 낙착됐다.
○…이번 경주 정상회담은 양국 정상이 현안논의를 위해 언제고 「가볍게」 만날 수 있다는 관례를 정착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일본측은 양국 정상간의 「테니스 회동」을 제의했으나 김 대통령이 테니스를 치지 못하여 무산됐다. 뒤이어 골프회동이 제의됐으나 우리측이 난색을 표시해 이 역시 무산됐다.
한국측은 김 대통령의 「전매특허」 비슷한 「조깅」을 제안했으나 이번에는 일본측이 거절하여 결국은 함께 산택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이번 회담이 실무방문인 만큼 정상회담후 나오게 마련인 공동성명도 생략됐고 대신 양국 정상이 일문일답의 간단한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호소카와 총리의 방한이 「공식」이 아닌 「실무」가 됨으로써 준비작업은 한층 수월하게 됐다.
우선 공식방문일 경우 민감하게 따져질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사과」 시비가 뒤로 물러나고 막바지로 현안논의에 들어갈 수 있는데다 환영행사 등 의전절차를 대폭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공동성명이 없으므로 어떤 사안에 「합의」를 보았느냐라는 결과에 대한 부담도 덜어지게 됐다.
92년 11월 노 대통령의 실무 방일이 단 하룻동안 이뤄졌으나 호소카와 총리의 이번 방한은 22시간에 불과하다.
양국 정상간 이번 만남은 현안을 논의하기 보다는 「인간적 교분」 증진과 함께 「공감의 폭」을 확대하는 분위기 외교에 치중할 것이다.
호소카와 총리는 과거사에 대한 사과표명·일­북한 수교 등에 대해 우리의 의사를 상당부분 수용하고 있고 한­일 경협에 대해서도 적극적이어서 회담진행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김현일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