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중앙독서감상문 대학일반부 최우수상 문각종 스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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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修行者의 하루도 그리 여유롭지만은 않다.요즘은『起信論 元曉疏』를 보고 있다.하루종일 원효와 마주 대하고 앉아 묻고 답하고하다보면 또 하루가 가고 잠시 스승과 작별한다.1천5백년이라는시간적 乖離는 애당초 없었음을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그러나 젖먹이 아이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배우려는 모습이 이러할까.나 자신이 타고난 鈍器임을 인정하면서도 佛法의 심오하고 난해함 앞에서 모든 의욕을 다 잃어버리곤 한다.
가끔씩이나마 이러한 무기력증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 때는 모든걸 다 때려치우고 싶어진다.「내 이따위 文字공부는 해서 무엇하리.마음만 깨치면 그만이지.禪家에서도 不立文字 見性成佛이라했고,禪은 부처님의 정신이요,敎는 부처님의 말이라 했으니 굳이 정신을 놓아두고 말을 배워 무엇하리.」 이렇게 마음먹고 나면 심신이 홀가분해진다.당장에 妄想은 끝없이 피어나고 생각은 미리 앞서 걸망을 꾸리고 운수행각의 길을 나선다.그러나 그럴 때면 어김없이 찾아와 나의 妄想을 박살내버리는 것이 있다.진심으로 나를 염려해주는 道伴의 따뜻한 위로다.부처님의 言說도 깨치지 못하는 둔기가 어찌 부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말인가.道伴의 충고는 차분하고 진지하다.우리 佛子에게 있어 經論은 지혜의원천이요,信心의 근간이며,저 부처님세계로 나아가는 이정표며 충직한 안내 자인 것이다.
그러하거늘 어찌 경전을 버리고 參禪인들 할수 있겠는가.내가 찰나간 방황한 사이 원효는 1천5백년의 시간 저편으로 숨어버렸다.그러나 나는 또 원효를 부를 것이다.원효뿐만 아니고 팔만대장경의 바닷속에 빠져들어 석가모니도,아난다도,용수 도,보조도,아니 그 누구라도 만나서 배울 것이다.
독서의 중요성을 전달하려한 의도였는데 비유도 적절한지 의문이고 도무지 두서가 없어졌다.모처럼 가만히 나의 前生事를 돌이켜보니 중학교때 백일장 입선이나 우등상 몇번 탄것을 제외하고나면한 십여년을 상이란 걸 타본 기억이 없다.
내가 出家한 이유라는 것이 그 시절에는 순전히 좀 특별하게 살고싶어서였다.어쨌든 상을 탄다는 것은 특별한 일임에 틀림없다.그러나 특별하고 걸출하며 유별난 것이 반드시 能事가 아니라는사소한 이치를 깨달은 것은 근래의 일이다.
가장 무난하고 원만한 것이 가장 특별한 것임을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전통도 그렇다.소리도 그렇다.우리 것은 무난하고 원만하다.그러나 수입돼온 것들은 특별하다(적어도 내눈엔).특별한만큼 아슬아슬하고 위험해 보이기만 한 것이다.공중에 구름다리를 걸고 가는 것처럼.당장은 멋있고 스릴도 있지만 언젠가는 썩어서 끊어지고 말 구름다리를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 땅 위로 내려서자.비록 자갈길이라도 가장 안전하고듬직하며 원만한 우리길을 가자.
또한 진리의 길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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