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해보상” “물가감안” 줄다리기/올추곡수매 드러난 쟁점과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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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수확줄어 생산비 너무 올랐다/농민/냉해 연계하면 영세농 더 불리/정부
다음 주말을 시한으로 잡고 있는 정부의 올 추곡 수매가와 수매량 결정작업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매년 이맘때면 정부는 추곡수매를 놓고 고민에 빠지게 마련이지만 올해는 그 정도가 특히 심하다.
실명제 시행이후 뭉텅뭉텅 풀린 통화량과 가까스로 눌러놓고 있는 각종 공공요금 및 공산품 등의 상승요인에 추곡수매가 인상까지 가세할 경우 내년도 물가 여건이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근로자들의 임금 현실화 요구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면 정부의 운신폭은 더욱 좁아진다.
이같은 이유로 정부는 냉해 피해와 벼 수매를 연계시키지 않는다는 방침을 분명히하고 있다.
○운신폭 더 좁아
농민들은 그러나 냉해피해를 들어 높은 값에 많은 양의 수매를 요구하고 있다. 농민들의 요구는 한마디로 냉해피해를 수매가와 수매량에 반영해 달라는 것이다.
냉해피해로 올해 벼 생산량은 작년보다 4백20만섬이나 줄어든 3천2백80만섬으로 추정되고 있다. 농협·전농 등 농민단체들은 생산감소에 따라 가마당 생산비는 크게 올랐고 이것은 당연히 수매가 인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올해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할 경우 올 벼수매가는 작년보다 14∼17%는 올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수매량도 피해농가의 생산량이 모두 수매될 수 있도록 최소한 1천1백만섬을 넘어야 하며,품질이 떨어진 벼도 수매될 수 있도록 수매등급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 단위농협 조합장들의 일치된 목소리다.
결국 농촌에 대한 소득보상적 성격을 띠고 있는 수매정책이 냉피해를 감싸 안아야 한다는 입장인 셈이다.
그러나 정부의 입장은 다르다. 냉해피해의 심각성은 인정하나 지역적으로 편차가 심해 이를 수매가와 연결시키면 곤란하다는 논리다. 냉해는 강원·경북·전북·충북 등 산간 고지대 논에서 심한데 수매가를 올리더라도 이 지역 농민들에게 돌아갈 혜택은 그리 많지 않다는 지적이다.
산간지역일수록 영세농인데다 냉해피해가 심해 수매에 응할 물량이 적다는 분석이다.
○피해 따로 지원
따라서 정부는 냉해피해는 이것대로 따로 지원하고 수매정책과는 연계시키지 않기로 한다는 방침이다. 냉해피해에 대해서는 현행 지원기준(농지 3천평 미만의 농가중 피해정도가 50%를 넘는 경우)을 다소 넘어서까지도 보상할 방침을 정했다.
이미 가동되고 있는 양정제도 개혁차원에서 볼 때도 넉넉한 추곡수매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농림수산부의 한 관계자는 『수매가와 산지가격과의 격차를 좁혀 쌀값의 시장기능을 회복시키고 장기적으로 농민들의 소득은 늘리되 재정부담은 줄이자는 것이 양정제도 개혁의 본질』이라며 『이같은 맥락에서 볼때 올해 수매가를 많이 올리기 곤란하다』고 강조한다.
현재 산지 쌀값이 80㎏ 가마당 10만원 정도로 아직 작년 수매가(1등품 기준) 보다는 2만6천원이나 낮은 것이다.
이와함께 수매가를 기준으로 할때 우리나라 쌀값이 세계에서 제일 높아 외국으로부터의 쌀시장 개방압력이 더욱 가중된다는 점도 우려한다.
9백만섬으로 잡고 있는 올해 수매량에 대해서도 적은 수준이 아니라고 산술적인 논리를 편다. 지난해 전체 생산량에 대비한 수매량 비율은 25.9%였는데 이 비율을 올해에 적용하면 8백50만섬이면 된다는 계산이다. 88∼92년까지의 평균수매비율(23.2%)을 적용하면 7백60만섬에 그치게 된다는 것이다.
또 내년부터는 계절에 따라 쌀값이 7%까지 오르는 것이 허용돼 농민들이 수매안된 쌀을 시장에서 팔아도 제값을 받을 여지가 많다는 점도 내세운다.
○제값 받을수도
양정제도 개혁과 경제적 논리를 앞세운 정부측 입장과 쭉정이벼가 깔린 가을 들녘의 농민 정서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형국이다.
아무래도 농촌 현실을 외면하기 어려운 정치권의 시각이 국회 「동의안」 처리과정에서 어떻게 접점을 형성할지 주목된다.<심상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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