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낯선 땅,낯선 사람(73) 덕호가 코를 만지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걸 모를까.이 섬에 있는 조선사람치고 그걸 모른다문 사람이 아니지.』 『여러 말 말고 대답만 해라.그때 고문 받다가 일본사람 찔러서 감옥소 간 친구…너 잘 모르지?』 『일이야 같이 안 했어도 얼굴이야 익지.이름이 뭐였드라.』 『치워라.이제와서 이름 생각할 거 없고….』 명국이 잠시 주변을 돌아보았다.일본여자 둘이 보퉁이에 무언가를 들고 숙소 쪽으로 지나갔다.
그들의 게다끄는 소리가 사라지기를 기다렸다가 명국이 말했다.
『새로 온 길남이라는 아이가 그 친구 아들인 거 같다.내 짐작에 확실해.』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여? 누구 아들이라구?』 『태복이 아들,틀림없어.내 짐작이 맞을 거다.』 덕호가 펄쩍 뛴다.
『너 지금 사람 놀래키나.애 떨어지겠다.』 중얼거리면서 덕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그렇다면 이거 일이 크게 잘못되는 거 아닌가.아니,여기가 어딘데 애비 아들이 줄줄이 기어들어와.
덕호가 헛기침을 했다.
명국이 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애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어.조서방한테는 사람을 찾아왔다구까지 하더라니.』 『그렇다면 이게 어떻게 되는 얘기냐.
그애가 아버질 찾아서 여기까지 왔다.그말 아냐?』 『그렇지.』『아,그러면 여기 컴컴한데서 이럴 게 아니잖니.그 녀석 붙잡아서 물어보면 되지.난 너 하는 일이 더 답답하구나.』 『너도 튀어나오는대로 주워섬기지 말고 좀 생각을 하고 나서 말을 해라.태복이가 그렇게 됐다는 걸 걔가 알아 봐라.젊은 혈기에 그애가 뭘 저지를지 아무도 장담 못한다,그거 아니냐.』 『저지르다니.젊은 애들이 우리처럼 미련한 줄 알어?』 『어쨌든 당분간은그애한테 아무 소리 안는 게 좋겠다 싶어서….』 덕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나는 못한다.사람 도리로도 나는 그렇게는 못한다.』『그럼 이야길 해 주겠다 그거냐? 아니 그애 보고 네 아버지 포승줄 묶여서 갔다.그럴 거냐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