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만도 지겨운 한­약분쟁(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보사부의 약사법개정안이 당초 원안대로 14일 입법예고되자 한의사와 약사 양측이 모두 이에 반대하고 있어 한­약분쟁은 불씨를 안은채 새 국면을 맞고 있다.
한의사측은 약사의 한약취급이 금지돼야 한다는 등 자기들의 주장이 관철될 때까지 각시·도시부 재량에 따라 폐업·단식농성을 벌이기로 했다. 이미 부산과 충북한의사회는 폐업을 결의한 상태다. 약사측은 일단 결의된 폐업원칙을 고수하면서도 입법예고기간에는 한방의 의약분업과 약사의 일률적인 한약조제권을 관철하는데 계속 노력한다는 자세다. 한의사·약사 양측 모두 여차직하면 의원과 약국문을 닫고 극한투쟁에 나서겠다는 태세에는 차이가 없다. 양보나 타협은 기미조차 엿볼 수 없는 양측의 경색된 태도에 정부로서는 강경대응 방침을 굳히고 밀어붙일 태세를 취하고 있다.
무려 반년 넘게 이들의 「밥그릇」 싸움을 보는 국민들의 느낌은 한마디로 지겹고 혐오스럽다는 감정 뿐이다. 국민의 건강보호와 질병치료의 책임을 자부하고 있는 전문인들이 그 책무는 내팽개치고 업권싸움에만 몰두하고 있으니 이건 사리의 본말전도가 아닐 수 없다. 이미 여러차례 지적한 대로 한의사와 약사에게 정부가 내준 면허는 단순한 이윤추구를 목표로 한 영업권이 아니라 국민건강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부여한다는 의미가 더 강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 책무를 마치 필요하면 자기들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특권인양 착각하고 폐업이나 휴업을 이득을 얻는 무기로 쓰려하고 있다. 그동안 궐기대회니,결의대회니 해서 약국 문을 닫을 때마다 국민들이 얼마나 당황하고 불편해했는가를 상기해보면 그들의 파업행위가 「국민을 깔본 짓」이라는 비난의 의미를 알 것이다.
이제 분쟁당사자들은 이권다툼의 추태를 그만두고 본연의 임무에 복귀하기를 촉구한다. 그리고 열흘동안이라는 입법예고기간 안에 양측이 다시 절충을 벌이기 바란다. 한방쪽에서는 의약분업이 사회전반의 세분화·전문화추세에 부응하는 조치임을 인정하고 수용해야할 것이다. 약사측은 정부가 의약분업 실시원칙을 세우고 있는만큼 그 시기를 기다리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 이에 필요한 준비시간을 참지 못하고 당장 실시를 고집하는 것은 무리다. 2년뒤면 실시될 양방의 의약분업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연구하는 것이 현시점에서 더욱 시급한 과제일 것이다. 과거 의약분업 시범실시때 전면분업이냐,부분분업이냐를 놓고 의­약간에 다투다가 결국 백지화된 선례를 반복함으로써 또 다시 국민의 지탄을 받는 일이 없도록 미리 대비해야 한다.
정부는 양측의 집단행동에 흔들리지 말고 계획대로 한·양방의 의약분업을 시행키 위한 세부문제와 교육 등 대책마련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