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검찰총장 왜 전격 사퇴했나/“자의냐 타의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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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확고한 검찰권 못세워 고심/자의설/청와대서 “개혁역부족” 판단/타의설
박종철 검찰총장의 전격사퇴를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검찰 내부엔 그의 사퇴배경을 놓고 설이 분분하다.
박 총장의 사퇴가 워낙 전격적으로 이뤄진데다 사퇴가 공식화되기까지의 과정에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박 총장은 13일 「사퇴에 즈음하여」라는 변을 통해 『새정부 출범이후 자기쇄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총장직을 물러난다』고 밝혔다.
박 총장은 재임 6개월동안 「문민정부의 사정한파속에서 확고한 검찰권을 세우지 못한채 일방적으로 끌려다닌다」는 비판론에 끊임없이 시달려왔고,슬롯머신 사건을 현직고검장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기도 했다.
TK출신인 그는 잇따른 TK인사 구속과 1차 재산공개후 자신에게 쏟아진 비난속에 안팎곱사등이의 마음 고생을 당했다.
박 총장은 취임후 계속 이같은 시련을 겪어오다 더 이상 견디느니 차라리 그만두기로 결심했다는 것이 자의설이다.
『대통령은 사퇴를 만류했다. 그러나 박 총장의 뜻이 워낙 확고해 어쩔 수 없었다. 취임후부터 계속 어려움을 겪어오다 김덕주 대법원장의 사퇴를 보고 용단을 내린 것 같다.』 청와대측도 마찬가지 설명이다.
그러나 전후과정을 지켜보면 자의로만은 볼 수 없는 부분이 많다. 박 총장은 사퇴의 변 말미에 『임기도중 물러나는 검찰총장은 저로서 마지막이 될 수 있도록 국민여러분의 성원을 부탁드린다』고 밝히고 있다.
만일 스스로 물러날 결심을 굳혔다면 이 부분은 당연히 『임기제를 다마치지 못하고 떠나 대단히 죄송스럽다』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박 총장은 기자들과 만나 『대법원장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냥 혼자 결정한 겁니다』라며 자신의 거취표명과 김 대법원장 사퇴사이의 연관을 부인했다. 자의였다면 자신의 사퇴가 몰고올 조직동요 등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한 뭔가의 노력이 있는게 당연한데도 매일 총장과 머리를 맞대는 대검 참모들에게 사퇴당일까지 전혀 내색도 안해 점심식사중 연락을 받고 허둥지둥 달려오게 한 것도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된다.
검찰내부에서는 타의설이 우세하다. 청와대측은 6개월간의 관찰을 통해 박 총장이 문민시대의 개혁작업을 이끌어 가기엔 역부족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며,김두희 법무장관의 『조직이 동요한다』는 재고 요청을 묵살했다는 것이다.
박 총장의 재산내용에 대한 청와대 사정팀의 실사가 진행되자 「더이상 남아있다간 검찰에 누만 되겠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설도 있다. 취임후 겪었던 갖가지 시련과 청와대의 불신임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자의나 타의중 결정적인 부분이 무엇이었는지는 박 총장 본인이 함구하고 있어 알 수 없다. 그러나 2년 임기제인 총장이 새정부 출범이후 불과 반년사이에 2명이나 바뀐것은 자의냐,타의냐와 상관없이 검찰권독립을 생각할때 바람직스럽지 않은 것만은 틀림없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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