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인터뷰>佛소장 외규장각도서 반환.연구 앞장 이태진 교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14일 訪韓을 앞두고 1866년 丙寅洋擾당시 프랑스가 가져간 外奎章閣도서의 반환의사를 밝혀 그동안애타게 外奎章閣 도서의 반환을 위해 국내외에서 노력해온 사람들의 가슴을 부풀게 하고 있다.
外奎章閣은 正祖가 1782년 奎章閣을 4곳으로 확충하면서 지정한 江華行宮안의 別庫로 宣祖이래 왕실사료를 보관해 왔으며 프랑스가 약탈해간 「外奎章閣도서」는 丙寅洋擾당시 外奎章閣에 보관돼있던 6천4백여책중 사료적 가치가 높은 3백40 여책이다.
外奎章閣도서는 75년 프랑스국립도서관 사서였던 朴炳善씨(62.여.콜레주 드 프랑스 연구원)가 베르사유 궁립도서관 분관창고에서 外奎章閣도서의 일부를 처음으로 발견,약탈당한 서적 2백97권의 목록을 실은 『朝鮮朝의 儀軌』를 발간하면서 관심이 높아졌었다. 外奎章閣도서의 소재가 알려진뒤 이에 대한 연구와 반환을 위해 앞장서온 서울大 李泰鎭교수(51.국사학과)를 만나 그역사적 의미를 되짚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최근 韓佛우호관계가 급진전됨에 따라 학계와 국민들사이에 外奎章閣도서 반환에 대한 기대가 높아져 가고 있는데 먼저 그 역사적 의미를 말씀해주십시오.
『正祖때 설치된 外奎章閣은 현재의 대통령 의전에 해당하는 「王室儀軌」가 보관된 곳으로 外奎章閣 서지류는 일반 문화재와 달리 왕실의 법통을 상징하는 「국가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대한민국이 朝鮮.大韓帝國.臨時政府로부터 法統을 이어받은 국가임을 자처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료들입니다.프랑스도 최근루이16세의 업적을 재평가하는 연구가 활발하고 부르봉왕가의 왕실문화재가 보관된 「헹스-노트르담사원」이 다시 각광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우리가 外奎章閣도서의 반환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그들도 잘 이해하고 있을 겁니다.』 -外奎章閣도서의 사료적 의미는 어느 정도입니까.
『朝鮮朝 왕실사료를 보관하던 곳은 奎章閣.外奎章閣.太白山史庫.鼎足山史庫등 4곳이었으나 外奎章閣 사료만 삼베대신 녹색비단으로 싸서 놋쇠로 묶은 최고급품이었습니다.보물에 눈독을 들인 로즈제독의 마음을 휘어잡았을 만한 책들입니다.異本이 없는 慶熙宮건축사료 「西闕營建都廳儀軌」등 당시 사료들은 대부분 筆寫本이기때문에 전부 유일본이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또한 조선문화의 중흥기라 일컬어지는 정조때 정리된 것이 많아 그림.글자 하나하나가 최고 수준입니다.이 책들은 조선 조 왕실의 의전과 복식.건축형태등을 연구하는데 필요할 뿐아니라 장례식에 쓰인 물품의 구입가격,왕실공사에 동원된 인부의 노임등 세세한 사항이 기록돼 사회경제사를 연구하는데도 귀중한 자료입니다.』 -外奎章閣 도서의 약탈경위와 소재가 밝혀진 경위는 어떻습니까.
『당시 기록을 보면 로즈제독의 강화도 공격은 나폴레옹3세의 지시에 따른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극동함대의 공격으로 外奎章閣이 불타고 값나가는 사료들이 약탈당했지만 약탈물은 본국에 제대로 접수되지 않았습니다.朴炳善씨가 역사학자 모리 스 쿠랑이 쓴 「한국서지」를 보고 파리국립도서관을 샅샅이 뒤졌지만 찾을 수 없어 동료연구원의 권유로 들른 베르사유 궁립도서관 파손본 창고에서 중국도서로 분리된채 훼손된 서적 일부를 발견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朴씨의 노력으로 外奎章 閣도서가 파리국립도서관으로 옮겨지고 비록 서양비단이지만 비단 장정을 다시 하는등 문화국답게 발견된 뒤의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었습니다.』 -그동안 이 도서들을 반환받기위한 노력은 어떠했습니까.
『명동성당 교회사연구소의 崔奭祐신부가 77년부터 프랑스해군성자료실의 韓佛관계자료를 「교회사연구」에 게재하던중 82년 丙寅洋擾 관련자료를 번역 게재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서울대법대 白忠鉉교수와 함께 91년 10월 서울대총 장명의로 외무부를 통해 프랑스에 반환을 공식요청했으며 92년 5월부터 서울대발전기금으로 「파리국립도서관소재 外奎章閣도서의 회수방안연구」를시작해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습니다.또 朴씨가 89년 불어로 탈고한 外奎章閣도서 해설연구서를 92년 7월 서울대와 콜레주 드 프랑스가 공동으로 출간한바 있습니다.외무부 현지공관의 노력뿐만 아니라 在佛지휘자인 鄭明勳씨등 민간인.학계가 프랑스 관계자들을 꾸준히 접촉해왔습니다.』 ***○…… 鄭明勳씨도 노력 ……○ -반환전망은 어떻습니까.
『수년에 걸친 노력과 최근 韓佛관계가 급속히 가까워진데다 미테랑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반환의사를 밝혔기때문에 반환은 시간 문제라고 봅니다.그러나 조급하면 일을 그르칩니다.일부에서 直指心經이나 往五天竺國傳등 유출경로가 外奎章閣도서와 다른 문화재를갑작스럽게 요구하는 것은 상황을 어렵게 만들뿐입니다.프랑스 석학 자크 제레네교수가 밝힌 것처럼 外奎章閣 도서는 약탈된 문화재임이 확실하고 도서반환은 양국관계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 아닙니까.』 李교수는 『1899년 프랑스는 대한제국으로부터 경의철도 부설권을 따내고 철도건설을 위해 차관을 제공하는등 철도와 관련,우리나라와 남다른 관계를 가져왔다』며 『경부고속철도의 차종으로 TGV가 선정되는등 韓佛우호관계가 과거 어느때보다 잘 유지되고 있는 차제에 外奎章閣도서의 반환은 시대적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李교수는『韓國社會史硏究』(86)『韓國社會發展史論』(92)등의단행본과 「江華島 外奎章閣遺址 調査記」등 80여편의 논문을 발표하는등 한국사회사연구에 뛰어난 연구업적을 남겨왔으며 89년부터 4년간 서울대 奎章閣실장을 맡아 外奎章閣도서 에 대한 연구와 반환노력을 주도해왔다.
〈辛聖恩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