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그여자의사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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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2.여름 새 두 마리(25) 화연은 정말 깜짝 놀랐다는 듯 얘길 하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웃는다.
『추운지 몸을 바들바들 떠는데,이마에서 열은 펄펄 나구요.이것 봐요.겨울 이불을 꺼내서 덮어줬더니 안 떨더라구요.몸은 겨울이불을 덮어주고 이마는 얼음주머니를 올려놓고 그랬어요.앰뷸런스를 불러야 되는거 아닌가 싶어서 서성이고 있던 참에 깨어난거예요.』 은서가 컵에 담긴 물을 다 마시자 화연은 옆에 놓여 있는 주전자에서 대추 끓인 물을 더 따라 다시 은서의 입술에 갖다댄다.
『조금 더 마셔요.수분이 다 빠져 나갔을거야.』 화연이 따른물을 다시 다 마시자 화연은 생긋 웃으며 컵과 쟁반을 탁자 위에 올려 놓으려고 침대에서 일어선다.
화연이 스치는 사이로 무언가 보인다 싶어 은서가 자세히 쳐다보니 벽쪽으로 밀어붙여진 작은 책장 위에 사진틀이 있다.사진틀속에 갓 태어난 것 같은 아이가 배냇저고리를 입은 모습으로 방긋 웃고 있다.
화연이 돌아와서 은서가 액자 속의 아이를 쳐다보자 자신도 그쪽으로 시선을 주며 웃는다.
『내 아이예요.』 『…….』 『지금 다섯살 됐죠.많이 자랐을거야.난 저때 얼굴밖에 다른 모습은 못봤어요.』 『…….』 아무 일도 아니라는듯 너무 가볍게 흥얼거리듯 얘기하는 화연의 말투에 은서가 빤히 쳐다보자 화연이 어깨를 움싯하며 웃는다.
『어색해 말아요.나도 처음엔 이런 식으로 얘기 안 했어요.아니,말을 할 수 조차 없었죠.저렇게 사진을 펴놓을 수 조차 없었어요.모든 소리가 다 아이 울음소리로 들렸죠.자동차 지나가는소리도,머리 자를 때 나는 가위 소리도,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도,커피를 끓이는 소리까지도요.시간이 얼마나 무서운줄 알아요? 그러던 것이 어느 날부터 얼굴조차 떠오르질 않는 거예요.그 뒤로 책갈피에 끼워놓았던 사진을 저기에 끼워 놓았죠.하지만 저게무슨 소용일까 싶기도 해요.이제 그앤 저 모습이 아닐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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