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친,루츠코이 부통령 정직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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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1일 알렉산드르 루츠코이부통령과 블라디미르 슈메이코 제1부총리를 권한정지시킨 것은『9월은 러시아의 운명을 결정짓는 달이 될 것』이라는 지난달 자신의 발언을실행에 옮기기 위한 정지작업으로 해석된다.그러나 옐친의 조치는헌법상 규정돼 있지 않은 월권행위라는 보수파의 반발을 야기, 러시아 정치는 다시 한번 파란을 겪을 것으로전망된다.
루츠코이부통령은 지난 91년 옐친대통령과 함께 선거를 통해 부통령에 당선된 인물.아프가니스탄 내전에서 舊蘇聯 공군 사령관으로 많은 공적을 세웠으며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해 대중적 인기가 높은 정치인이다.
그는 지난 봄 옐친대통령이 헌법을 무시하고 포고령에 의한 통치를 시도한 이후부터 옐친의 강력한 비판자가 됨으로써 옐친에게는 골칫거리가 돼 왔다.옐친 측근 인물,특히 슈메이코 제1부총리에 대한 부패혐의를 폭로함으로써 최근 절정에 달 하고 있는 보수파와 개혁파간의 「추악한 전쟁」을 촉발시킨 인물이다.
옐친이 루츠코이를 슈메이코와 함께 부패혐의 수사가 진행중이라는 것을 이유로 권한을 정지시킨 것은 양자가 서로의 부정을 폭로한 인물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헌법상 논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부통령권한 정지조치에 대한 반발을 누그러 뜨리려는 의도로 보인다.
옐친의 개혁은 지난해 부터 보수파가 장악하고 있는 최고회의(의회)의 방해로 거의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이같은 상황은 최고회의와 대통령의 권한을 거의 동등하게 보장하는 舊소련 헌법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는 정치제도상의 허점에 주로 기인한다.
옐친은 개혁의 정체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식 대통령 중심제를 본뜬 새 헌법을 도입,개혁을 본궤도에 올려놓으려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옐친은 지난달 지방지도자들과의 모임에서 9월이 러시아운명을 결정짓는 달이 될 것이라고 강조함으로써 개헌과 총선이라는 두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본격적 정치투쟁에 나설 것임을예고한 바 있다.루츠코이부통령 권한정지는 보수파에 대 한「선전포고」인 셈이다.이에 맞서 보수파 거두 루슬란 하스불라토프 최고회의의장은 3일 소집되는 최고회의에서 루츠코이 권한정지를 무효화할 것이라고 천명함으로써 옐친의공세를 원천봉쇄할 뜻임을 밝혔다.러시아의 정국이 일찌감치 겨울로 접어 들고 있다.
〈康英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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