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그여자의사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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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2.여름 새 두 마리(19)남자가 너무 울자,여자가 남자의 어깨를 친다.이봐요.창피하게 왜 이래요.여기에 당신과 나 둘뿐이에요? 사람들이 다 본다구요.
창피하게? 은서는 그녀를 사랑하느냐는 자신의 말에 대답을 못하는 완의 얼굴을 보다가 눈물이 핑 돌려는걸 참는다.
여자는 옆자리에 두었던 핸드백을 무릎 위로 옮겨놓고 탁자에 얼굴을 묻고 우는 남자를 잠시 바라본다.그렇게 운다고 지난 일이 되돌아와요.얼굴만 한번 보자고 해놓고 이렇게 울면 어쩌란 말이에요.남자가 여자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탁자에 묻는다.너는 어떻게 그렇게 싹 털어버릴 수가 있냐? 그렇게 되니?더는 앉아있을 수가 없는지 여자는 우는 남자를 버려두고 새벽의유리문을 밀고 나가버린다.
은서는 거리 저편으로 사라지는 여자를 안 보일때까지 유리 건너로 바라봤다.우는 남자는 여자가 가버린줄을 모르는지 계속 중얼거리고 있다.너는 가버리면 그만이지만,나는 어떡하냐,나는,응나는. 남자가 성가신지 완이 거의 일어날듯 하며 묻는다.
『나갈까?』 은서는 반쯤 일어서 있는 완을 앉아서 올려다 본다. 『대답해 봐.그녀를 사랑해?』 『….』 『그럼 나를 사랑하지 않아?』 완이 다시 앉는데 울고 있던 남자가 힘없이 일어나 나간다.은서의 시선이 남자를 따라간다.남자는 새벽 앞에서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겠다는듯 우두커니 서 있다가,저쪽으로 잠시 몇걸음 걷다가,다시 이편으로 몇 걸음 걷다가,아직 파란색으로 바뀌지도 않은 건널목에 느닷없이 뛰어 들어 지나가던 택시에치여버린다.
『안돼.』 은서는 유리문에 손바닥을 갖다댔다.그때야 완도 거리를 내다본다.교통순경이 달려오고,남자가 뛰어든 택시에 타고 가던 승객과 기사가 내리고,퇴근하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며 금세 주변이 왁자해진다.
은서와 완은 주변이 조용해질 때까지 거리를 내다보고만 있다.
남자가 다른 택시에 실려 병원으로 실려가고 남자를 친 기사와 교통순경이 뒤따를때까지 둘은 거리를 내다보고 있다.누군가 남자가 흘린 피를 씻으려고 도로에 물을 퍼붓는 것을 둘은 바라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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