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벌백계(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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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일벌백계」란 말이 있다. 한 사람의 죄를 엄하게 처벌함으로써 여러사람이 저지를지도 모를 잘못을 미리 경계해 예방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엄한 처벌을 받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다. 죄질에 비해 형벌이 너무 가혹하다는 불평을 하게 될 것이다. 곡식 낟알 몇개를 쪼아먹으려던 종달새가 사람이 쳐놓은 덫에 걸렸다. 아무리 애를 써도 풀려날 수 없다는 것을 안 종달새는 푸념했다. 『금은보석을 훔친 것도 아닌데 이렇게 잡혀 죽게됐다는 것은 너무 억울해.』
벌이 너무 무겁다고 탓할게 아니라 애당초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담은 이솝의 우화다. 그러나 종달새가 아무리 미물일지라도 먹어야 살고,그러려면 들판의 곡식이라도 훔치지 않을 수 없다는 절대절명한 생존적 측면을 이 우화는 외면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인간중심의 독단이요,불공평이 아닐 수 없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도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얼마전 대학부정입학 문제가 줄줄이 터져나와 사회지도급 인사들이 톡톡히 망신을 당할 때의 일이다. 당시 모장관은 자녀의 편법입학사실이 고위공직자로서 첫 케이스로 르러고 장관직을 사임하는 처지가 됐다. 이른바 일벌백계의 시범케이스로 희생됐던 것이다. 그러나 다른 모장관도 똑같은 편법입학 사실이 드러났으나 장관직을 보전하고 지금도 그 자리에서 국정을 주무르고 있다. 적발된 시기의 선후차이로 처벌의 경중이 하늘과 땅 차이만큼 달라진 것이다.
금융실명제시행 직후 동아투자금융이 양도성예금증서(CD)를 산 고객의 차명계좌를 실명으로 소급전환했다 해서 철퇴를 맞았다. 정부가 이 회사에 대해 인가취소를 검토한다고 발표함으로써 거액의 예금이 빠져나가는 등 한때 존망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또 같은 내용의 부정을 저지른 항도투자금융에 대해서도 보다 무거운 징계가 내려질 것이라고 한다. 이들의 잘못을 비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이들 금융회사의 부정은 내부자의 제보에 의해 드러났을뿐 알려지지 않은 유사한 불법행위가 훨씬 많을 것으로 금융가에서는 보고 있다. 걸려든 경우만 가혹하게 당한다는 불평이 나올만도 하다. 법은 백벌백계로 공평·공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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