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여자의 4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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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여름 새 두 마리(15) 하지만 은서는 완의 사무실 근처로 가지 않는다.그녀가 택시에서 내린 장소는 화연의 미장원 앞이다.그녀는 화연의 수 미장원 앞에서 유리문 안으로 화연을 들여다 본다.
유리문 안의 화연은 여고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의 머리에 가위를 대고 있다.그 모습이 너무 단조롭고 평화로워 보인다.그래서은서 자신이 알고 있는 화연의 모습은 없고 화연은 오로지 미용사인 것만 같다.그게 낯설어 은서는 선뜻 미장원 문을 밀고 들어갈 생각이 나질 않는다.은서는 미장원 문을 밀고 들어가는 대신 미장원 앞에 놓인 공중전화 박스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이제는 외우고 있는 완의 사무실 전화번호를 수첩을 꺼내 확인하며 숫자마다 하나하나 눌렀다.
『여보세요.』 박효선이다.
전화를 걸 때만 해도 은서는 다 퇴근해 빈 사무실에 전화벨만울릴 걸 생각했다가 정작 전화를 받으며 박효선이 여보세요? 하자,멍해졌다.
『여보세요?』 은서는 박효선의 여전히 생기있는 음성을 듣자,맥이 탁 풀렸지만 은서는 물러서지 않고 완을 바꿔달라고 했다.
박효선이 자신의 음성을 알아채리라,생각했지만 은서는 개의치 않았다.개의치 않기로 한건 박효선쪽이 먼저니까.완의 곁에 내가있다는걸 그쪽이 먼저 개의치 않기로 했으니까.은서도 개의치 않기로 했다.자신이 완을 찾고 있다는걸 박효선이 아는걸 개의치 않기로. 『잠깐만 기다리세요.』 박효선 또한 완을 찾는 전화 속의 목소리가 은서임을 알 것인데도 개의치 않고 잠깐만 기다리세요,하고선 완에게 수화기를 넘겼다.
『네.』 완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건너오자 은서는 잠시 할말을 잊었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어디에 남아 있었는가.더 빠질 힘도 없는 것 같았는데 완의 음성에 더 힘이 빠지며슬픔이 밀린다.도대체 누구냐는 듯한 완의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은 음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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