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많은 기업정리” 재확인/라이프 조내벽회장 퇴진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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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정경유착 혐의·노사분규 겹쳐/빚 2천7백억… “회생난망”판단
서울신탁은행이 라이프그룹의 조내벽회장을 경영 일선에서 퇴진시키고 그룹 전체에 대한 경영권을 장악키로 해 실명제 충격속의 재계를 다시 긴장시켰다.
은행측은 『부동산경기 침체와 노사갈등으로 현 경영진으로는 경영 호전을 기대하기 어려워 선택한 부득이한 조치』라고 전제,『외부의 압력에 따른 고려는 없었으며 전적으로 은행이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은행측 설명대로라면 그동안 관리은행이 기업에 끌려 오다시피 하며 부실을 키워온 「부실기업 관리행태」에서 벗어나 회생가능성이 있을 때 서둘러 주거래은행의 관리권을 행사,회사 되살리기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러나 그동안 특히 조 회장의 동생인 정민씨(그룹 부회장)가 월계수회 서울시 지부장을 지내는 등 라이프그룹이 월계수회 자금줄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던 점과 라이프그룹의 경영상황이 아직까진 법정관리에 들어간 한양과 같인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입김이 작용한 것 같다는 금융계의 추측도 함께 나오고 있다.
라이프주택은 87년 산업합리와 업체로 지정되면서 지원받은 4백89억원을 5년만에 갚기는 했지만 경영은 여전히 좋지 않은 상태다. 누적적자가 2천억원에 이르며 부채가 자산보다 2천2억원 더 많은 자본잠식 상태다. 20일부터는 라이프그룹은 은행이 파견한 11명의 관리단(단장 유오현 여신기획부 부부장)이 그룹의 계열사 사장 윗자리에서 그동안 채권담보관리를 하던 식에서 벗어나 자금과 영업 등 모든 면을 관리하게 된다.
조 회장 형제는 26%에 이르는 라이프주택 주식을 갖고 있지만 경영권행사를 못하게 됐으며,그나마 이 주식을 은행에 담보로 잡고 있는데다 언제든지 처분해도 좋다는 처분동의서까지 받아둔 상태다.
따라서 라이프주택의 경영이 완전히 정상화돼 2천7백억원에 이르는 은행빚을 모두 갚는다면 몰라도 조 회장의 경영복귀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전망된다.
또 라이프유통과 경주 조선호텔 등 2개 계열사를 팔아 은행빚을 갚도록 하겠다는 은행의 방침으로 미뤄 모기업인 라이프주택의 제3자 매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분위기다.
한편 재계는 은행측의 이번 결정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을 하고 있다. 7월말 회사측이 노조간부 4명을 해고하자 노조는 조 회장 형제가 노임·자재값 등 공사대금을 부풀려 일부를 빼돌리는 방법으로 26억원에 이르는 비자금을 조성했으며,이 자금중 일부를 정치자금으로 제공했다고 폭로하고 나섬으로써 노사간 대립이 심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조 회장의 퇴진결정이 18일 오전 11시쯤 전격적으로 결정됨으로써 정치적인 고려가 있었을 거라는 추측을 더하고 있다. 실명제 실시이후 기업 비자금 등 검은 돈을 양성화시키고 정경유착을 끊으려는 정부의 강경한 의자가 확인 또는 전달됐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조 부회장은 한때 박철언 국민당의원이 주도하는 월계수회 서울시지부장을 맡았으며 이와 관련,조 부회장의 손윗동서인 현 김영석 서울신탁은행장이 김준협 전 행장의 뒤를 이었을 때 부담이 되었을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왔었다.
어쨌든 라이프그룹 사건은 지난 5월 배종렬 한양그룹회장의 퇴진에 이어 「문제가 있는 기업주를 기업으로부터 분리한다」는 새 정부의 기업관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것으로 풀이된다. 법정관리까지 가서 제3자 인수가 추진된 한양과는 달리 라이프는 담보여력이 충분하며 아직은 그다지 상황이 심각하지 않아 은행관리라는 처방이 내려진 게 다른 점이다. 이는 또 최는 5공정부의 국제그룹 해체결정에 대한 위헌결정에서 보여주듯 부실기업에 대한 처리는 「주거래은행이 알아서 하는 식의 절차」를 밟게한 것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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