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탁금 늘어 증시 "일단 안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실명제 실시 이후 주식 시장으로 자금이 오히려 몰려들고 있다.
금융 실명제가 실시되면 증시에서 돈이 대거 빠져나갈 것이라는 당초의 예상과는 다른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실명제 실시 이후 돈이 제도권 금융 기관에서 퇴장, 숨어버리는 경향이 우려되고 있는 가운데 일시적으로나마 자금 유입처가 「발견」된 셈으로 향후 자금 흐름과 관련, 주목되고 있다.
물론 아직 며칠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같은 자금 유입이 계속될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일단은 증시 안정에 도움이 되는 반가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증권감독원에 따르면 고객들이 주식을 사기 위해 증권 회사에 맡겨놓은 고객 예탁금이 16일 현재 2조5전8백8억원에 이르러 실명제 실시 직전인 지난 12일의 2조4천4백16억원 보다 1천3백92억원 (5.7%)이 늘어났다.
예탁금은 실명제 실시 첫날인 13일에만 소폭 줄었을 뿐 이후 증가 추세로 돌아섰고 16일에는 특히 하루동안에만 1천억원 이상이 늘었다. <그림 참조>
증권 업계는 그동안 『실명제가 실시되면 가·차명 주식 투자 자금의 이탈과 일반 투자자의 심리적인 위축 등으로 고객 예탁금이 4천억∼5천억원 가량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았었다.
이같은 예측과는 달리 증시 자금이 늘어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돈이 갈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
부동산 시장은 정부의 강력한 투기 억제 시책이 잇따라 발표되며 여전히 침체돼 있고 해외 자금 유출도 자금 출처 조사 강화 등으로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주식의 유력한 대체 투자 수단인 채권 쪽도 「사자」 「팔자」가 거의 없어 시장 자체가 형성되지 않고 있는 데다 각종 채권의 유통 수익률이 계속 상승 추세 (채권 값은 하락 추세)여서 투자 메리트가 상당치 떨어져 있는 상태다.
한편 정부가 실명제를 전격적으로 실시하면서 3천만원을 초과해 인출할 때에는 세무서에 통보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도 증시에서 돈이 빠져 나가지 않는 직접적인 제어장치가 되고있다.
증권사들은 이와 관련, 『큰손들은 주가 등락에 따른 손익보다 신분 노출·세금 추징 등을 더 신경 쓰고 있기 때문에 보유 주식을 판다고 해도 이를 인출하지 않고 현금 (예탁금) 형태로 놓아둘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