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통보」가 찜찜한 납세자/심상복 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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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금융실명제가 전격적으로 실시된지 오늘로 닷새째를 맞고 있다. 그동안 많은 독자들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내용은 크게 두종류로 갈렸다. 첫째는 사정이 이러이러한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문의성 전화였다.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제도니 만큼 의문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다른 내용의 전화는 바로 「기분 나쁘다」는 것이었다. 정부가 두달간 예금인출액이 3천만원을 넘는 사람에 대해서는 국세청에 통보해 특별관리한다고 밝힌데 대한 불만인 것이다.
독자들은 김영삼대통령도 실명제 도입을 선언하면서 이 조치가 그동안 실명으로 금융거래를 하던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아무런 불이익이 없음을 강조했는데 왜 실명예금까지 규제하느냐고 따졌다.
기자는 이같은 불만 또는 걱정에 대해 「국세청 통보」 장치는 갑작스런 예금인출 사태로 야기될 수 있는 혼란을 예방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해줬다.
그러나 설명은 잘 먹혀들지 않았다. 세무서가 어떤 곳인지 몰라서 하는 소리라는 것이다. 털어서 먼저 안나는 사람 있느냐고도 했다. 독자들과 승강리를 벌이면서 기자는 한가지 분명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명단통보와 세무조사를 동일시하고 있으며,세무행정에 대해 원초적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세무서가 국민들로부터 환영받을 곳은 못된다고 하더라도 어쩌다가 이토록 두려움의 대상이 된 것일까. 이는 세금을 내는 국민들과 국가를 대신해 세금을 징수하는 세무공무원 양측 모두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우선 세금은 적게 낼수록 이익이라는 낙후된 「납세의식」이 문제다. 세금을 빼먹는 일이 「능력」으로 통한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융통성 많은」 징세행정인 것이다. 담당직원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세금액수가 달라지는 일이 자주 있었던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납세자와 세무공무원의 관계가 금융실명제 시대에 걸맞게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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