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괌 인근에 러시아 핵폭격기 냉전 이후 첫 장거리 훈련 무력 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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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러시아의 Tu-95 폭격기(아래쪽)가 2003년 9월 28일 미국 알래스카에 접근하자 미 공군의 F-15C 이글 전투기가 감시를 위해 따라붙고 있다.

러시아가 8일 핵무기를 실을 수 있는 장거리 전략폭격기를 미군 기지가 있는 태평양의 괌 인근까지 출격시키는 무력 시위를 했다. 소련 붕괴(1991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에 대응해 미군 전투기가 즉각 출동해 근접 감시 비행을 했지만 무력 충돌은 없었다. 괌은 태평양 지역 최대의 미군 근거지로 앤더슨 공군기지와 아프라 하버 해군기지가 있다.

폭격기 출격은 풍부한 오일 달러를 바탕으로 국제무대에서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는 러시아가 연이어 펼치고 있는 무력 시위의 일환이다. 특히 러시아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유럽 미사일 방어(MD) 기지 건설을 강행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경고 성격이 강하다.

◆태평양.대서양.북극해서 동시 훈련=파벨 안드로소프 러시아 공군 소장은 9일 "어제 극동기지에서 발진한 Tu-95(나토 명 베어) 폭격기가 13시간을 비행해 괌 인근까지 날아갔다 왔다"며 "이는 8일부터 이틀 동안 계속된 장거리 폭격 훈련의 일환이었다"고 밝혔다. 정확한 출격 장소는 밝히지 않았으나 극동 도시 콤소몰스크나아무레와 하바롭프스크 등에 있는 공군기지일 가능성이 크다.

안드로소프 소장은 "장거리 폭격기들은 냉전 시절에도 태평양을 비롯한 미 항공모함 작전지역까지 날아가 미군기들과 조우했다"며 "이번 출격으로 과거의 전통이 되살아났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러 공군에 따르면 이번 훈련 중 Tu-95 12대, Tu-160 4대, Tu-22M3 14대 등 모두 30대의 장거리 폭격기가 동시에 출격해 태평양과 대서양.북극해 상공에서 훈련을 펼쳤다. 4대의 공중급유기가 이들을 지원했다. 폭격기들은 전투기와의 공조, 적 방공망 침투, 미사일 발사, 공중 급유 등의 훈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가 장거리 폭격기들을 이처럼 대규모로 동원해 훈련한 것은 소련 붕괴 이후 처음이다. 러 공군 대변인은 "우리 폭격기들이 훈련하는 동안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측 전투기들이 나란히 날며 감시했다"고 말했다.

◆핵탄두 장착 가능=미 국방부도 러시아 폭격기가 괌 섬 부근에서 훈련한 사실을 확인했다. 미 국방부 대변인은 "우리 전투기들이 요격 준비를 했지만 러시아 폭격기들이 괌 기지나 미군 함정 가까이 접근하지는 않아 그럴 필요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장거리 크루즈 미사일을 최대 16기까지 싣고 1만5000㎞를 날수 있는 Tu-95 폭격기는 냉전의 상징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미국 본토에 대한 핵 공격이 주요 임무였기 때문이다. 최근엔 미 항공모함을 공격하기 위한 용도로 주로 운용되고 있다.

냉전 시절 소련 폭격기들은 정기적으로 나토나 미국 공군 관할 지역까지 출격하는 훈련을 했다. 그러나 소련 붕괴 이후 훈련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어지면서 이 같은 정기 훈련은 사라졌다. 그러다 오일달러로 경제 사정이 좋아지면서 훈련이 되살아났다.

유철종.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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