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출세도 좋지만 내 생활 더 중요”(공무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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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한직 활용·취미활동 열중/비인기 부처 지원자도 급증추세/성취감 있다면 힘든자리 자청도
『상관의 눈치 살피지 않고 제 할일만 한다. 힘들고 개인시간 많이 뺏기는 요직보다는 한직이라도 적성에 맞는 자리를 선호한다. 일과후에는 여가·취미생활,사회활동에 열중한다.』
기성층과 구별되는 요즘 20,30대 젊은 공무원들의 특징이다. 이른바 「신세대 공무원」.
공무원사회도 점진적인 세대교체가 이루어져 이제는 국장·과장급 이상을 제외하고는 이들 20,30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의 모습이 신문 등에 「무사안일」 「기강해이」 등의 단어로 묘사될 때 분노와 좌절을 느낀다. 그만큼 자존심도 강하지만 「개인주의적」이라는 비난도 사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눈치와 연줄을 중시하는 관공서 사무실 분위기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추세는 분명하다.
토요일 관공서에서는 운동화와 캐주얼복 차림으로 출근하는 신세대 공무원이 곧잘 눈에 띈다. 점심시간이나 퇴근시간후 사무실에 남아 컴퓨터를 두드리는 젊은 직원들도 자주 보인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실중팔구 「벽돌쌓기」 등 컴퓨터 전자오락을 즐기고 있는 직원들이다. 이들에게 컴퓨터는 골치아픈 서류뭉치와는 달리 업무의 수단이며 놀이기구다. 야근하라고 하면 피하면서도 저녁늦게 남아 컴퓨터 전자오락을 하는데는 시간을 아끼지 않기도 한다.
환경처 김모사무관(32)는 『컴퓨터는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혼자 즐길 수 있는 스트레스 푸는데 그만』이라고 말했다.
신세대 공무원의 두드러진 특징은 일 못지않게 취미활동에도 열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부처마다 볼링·테니스·등산 등 동호인 모임에 젊은 직원들의 활동이 크게 늘어나고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활기를 보이고 있다.
교육부 「볼링 동호회」의 경우 20대와 30대 초반의 직원 20여명이 참여,매월 둘째·넷째 토요일 오후 정기전을 열고 있다. 볼링 관련서적을 사서 돌아가며 읽기도 하는 등 열의가 높고 애버리지 1백50점 이상의 수준급도 6∼7명이나 된다.
노동부에도 등산모임과 볼링모임에 70여명의 젊은 회원들이 참여,일과후의 취미생활에 열성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여가시간을 이처럼 즐기는데만 쓰는 것이 아니라 사회활동과 연구활동에 투자하는 실속파도 많다.
대표적인 모임이 올 연초 보사부 경제기획원 등 여러부처 30대 사무관들이 주축이 돼 만든 전국청년전문가연합(가칭). 사회 현안에 대해 젊은 감각으로 문제의식을 제시해 정책대안을 도출해보자는 취지로 구성해 매월 정기모임을 갖고 있다.
젊은 고시출신중에는 일과후 대학원 수강 또는 대학·학원 출강 등에 나서는 공무원도 많다.
교육부 김모사무관(33)은 퇴근후 부업을 겸해 서울시내 모고시학원에 강사로 나간다.
공직사회의 3D 기피현상이기는 하나 요직보다는 개인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는 자리를 선호하는 것도 신세대 공무원의 특징중 하나다.
툭하면 야근하기 일쑤지만 진급이 잘 돼 얼마전까지만해도 서울시청에서 최고 인기부서였던 인사·감사·위생관련 부서도 최근 들어서는 기피부서로 전락했다. 반면 동사무소 사무장이 올들어서 최고 경합부서로 떠올랐다.
상관들을 많이 상대할 필요도 없고 야근이 거의 없는 한직이기 때문이라는게 서울시 관계자의 분석.
그러나 자신의 적성과 새로운 경험을 쌓기 위해 별로 빛도 나지 않고 남들이 꺼리는 위험한 일을 자원해서 맡는 「소신파」도 적지 않다.
외무부 주한 공관 담당관실 권희석사무관(30)은 지난달말 소말리아 유엔 PKO(평화유지활동)본부 근무를 자원해 6개월 예정으로 출국했다. 그동안 줄곧 본부에만 근무해온 권씨의 변신에 대해 외무부 관계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지원한 것은 일종의 성취감을 위한 모험』이라고 평가했다.
과학기술처·문화체육부·노동부 등 그동안 고시 출신들에게 별로 인기없던 부처에 젊은 사무관의 지원이 크게 늘고 있는 것이 요즘 현상이다.
90년 행시합격 이후 노동부를 지원해 근무하고 있는 정지원사무관(28·법무담당관실)은 『근로자의 문제를 다루는 일에 관심이 있어 지원했다』며 『공직사회에도 공무원은 공인이라는 인식보다 사회의 많은 직업중 하나라는 생각을 가진 공무원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제정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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