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이 추천하는 와인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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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다. 우리나라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대기업 총수 와 CEO들은 어떤 와인을 좋아할까.

글로벌 활동이 잦은 경영자들은 아무래도 자주 와인을 접한다. 전문가 수준의 높은 식견으로 희귀한 빈티지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와인은 하나의 제품이자 하나의 스토리다. CEO들도 와인에 스토리를 담아 메시지를 전한다. 이들이 추천하는 와인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꺼리들을 모아봤다. [편집자]

올해 초 전경련 회장단 모임에서 이건희 회장이 추천한 와인은 샤토라투르 82년산이었다. 샤토라투르는 그랑퀴르급 최고급 와인의 대명사인데다 82년 빈티지는 최고로 손꼽힌다.

라뚜르는 성(城)을 뜻하는 프랑스어. 전경련이 재계를 든든하게 지키는 성벽 노릇을 해달라는 부탁의 메시지가 은근히 담겨 있지 않았을까. 올초 전경련 회장단 회의는 차기 회장 선출 논의로 한참 시끄러울 때였다. 이후 샤토라뚜르는 '이건희 와인'이란 애칭으로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 회자됐다.

이건희 와인은 이탈리아 유명 와인인 사시까이아가 원조다. 이건희 회장은 몇해전부터 명절 등을 기념해 계열사 사장들이나 임원들에게 사시까이아 와인을 선물했다.

사시까이아의 애칭은 수퍼토스칸. 토스카나 지역에서 탄생한 최고의 와인이란 뜻이다. 이탈리아 서쪽에 위치한 토스카나는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지이자 포도 올리브 산지로 유명하다.

이탈리아는 전통적으로 프랑스보다 많은 와인을 생산한다. 그러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품질을 희생했다. 청포도를 섞고, 이탈리아 품종 포도만 사용하라는 불합리한 정뷰 규제까지 있었다. 이같은 규제 덕에 이탈리아 와인은 세계에서 이름을 얻지 못하고 내수용에 그쳤다.

이같은 상황을 타개한 게 사시까이아였다. 토스카나 일부 와이너리들은 와인법을 어기고, 청포도를 섞지 않은 와인을 만들기로 했다. 가벼운 맛 일색인 이탈리아 산 포도(산지베오제) 대신 까베르네소비뇽과 멜롯 등 프랑스 포도품종도 들여왔다.

사시까이아는 까베르네소비뇽을 주품종으로 1968년 첫 선을 보인 와인이다. 사시까이아는 10년 뒤 영국에서 열린 와인컨테스트에서 최고의 와인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이때부터 수퍼토스칸으로 불린다.

사시까이아 외에 티냐넬로, 솔라리아 등도 수퍼토스칸으로 불린다. 이 회장이 선물하는 와인 중엔 티냐넬로도 있다.

이건희 회장이 수퍼토스칸을 임원들에게 선물하는 건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현 체제를 뛰어 넘는 혁신을 하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현 체제에 순응만 했다면 수퍼토스칸은 영원히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탈리아 와인이 프랑스 와인에 버금가는 명성을 얻기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폭탄주로 유명한 삼성의 술문화를 변화시키고, 글로벌 음주 매너를 배우라는 메시지도 물론 들어 있었을 것이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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