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다운 휴가 못가는 장관들/일정은 잡았지만 「그림의 떡」일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가서도 마음못놔 매일 사무실에 전화/강연등으로 평소보다 더 바쁜 경우도
새정부 각료들의 여름휴가는 무덥다.
억지로 일정들은 잡아놨지만 제대로 휴가를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 휴가를 가서도 매일 사무실에 전화를 하고,하루씩 휴가를 연장해가는 하루살이 휴가를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23일부터 휴가중이던 김덕용 정무1장관은 아시아나 항공기 사고로 하루 앞당겨 27일 아침 총리실을 찾아왔다. 이계익 교통부장관은 다음달 30일로 예정돼 있어도 추락사건의 주무부장관이어서 휴가를 갈수 있을지 의문시되고 있다. 이달 30일부터 휴가를 시작하려던 이해구 내무장관은 연기가 불가피하다.
정부청사의 한 장관비서관은 『새 정부 들어 벌여놓은 일은 많은데 휴가가 제대로 되겠느냐. 휴가를 가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 제대로 쉬지 못한다』고 장관의 심정을 대신 전했다. 마음이 사무실에 있으니 차라리 휴가를 가지않고 싶은 장관도 많다. 그러나 장관이 휴가를 안 가면 직원들이 휴가를 찾아먹기 힘들어 억지춘향격으로 며칠씩 휴가 일정을 잡고 있다.
황인성 국무총리도 마찬가지다. 황 총리는 총리 휴가일정이 잡혀야 다른 국무위원과 정무직 공무원들이 휴가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건의 때문에 다음달 11일부터 3박4일 일정을 잡아놨다. 그러나 12일이 보궐선거인데다 15일에는 임정요원들의 유해를 봉환하는 행사를 치르게 돼 있어 사실상 예정된 부도수표라는 것이 비서실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난 24이리부터 27일까지 휴가를 보낸 이경식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은 휴가 첫날부터 강연을 다녔다. 24일 청주에서 열린 능률협회 초청 세미나,25일 오전 21세기 경영인클럽 주최 재계포럼,오후에는 지역경제인과의 간담회에 참석하는 등 평소보다 더 바쁘게 움직였다.
휴가를 하루 줄여 돌아온 김덕용장관은 예년의 휴가때처럼 지방의 명산을 찾는 등산을 즐기지 못했다. 『서울근교의 산을 오르기도 하고 서울시내를 다니며 아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휴가의 전부』였다고 한다.
한완상 통일원장관은 바쁘게 돌아가 핵문제나 범민족대회 등 8월15일을 전후한 남북관련 움직임들 때문에 멀찌감치 8월20일쯤으로 휴가를 정하고 있다. 현재 계획으로는 유성온천 등 대전부근에서 가족과 3박4일을 보낼 작정이지만 통일문제가 달아오르는 8월에 휴가를 찾을 수 있을 미지수다.
이렇게 안절부절 못하며 보내는 휴가인지라 외국 출장을 자주 다니는 한승주 외무장관은 아예 휴가를 반납했다. 이 바람에 비서실 직원들은 장관이 아세안 확대 외무장관회담 참석차 싱가포르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 차례대로 휴가를 가고 있다.
지역구의원을 겸한 장관들은 대개 시간이 나면 오랜만에 지역구를 찾겠다고 한다. 이해구장관은 아시아나항공 사건으로 연기가 불가피하게 됐지만 기회가 닿으면 취임후 한번도 못간 지역구에 갈 생각이다. 이민섭 문화체육부 장관도 마찬가지다.
권영해 국방장관처럼 아예 일정을 잡지 않고 있는 경우도 있고,홍재형재무·허신행 농림수산부장관처럼 (7월30일) 서울집에서 정책구상이나 하겠다는 장관도 있다. 이인제 노동장관처럼 현안에 발목이 잡혀있는 경우도 있고,고병우건설·송정숙보사·황산성 환경처장관처럼 휴가일이 다가와도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비하면 김두희 법무장관(산청)이나 오병문 교육장관(광주)처럼 고향을 찾으려는 장관은 알찬 계획파라 할 수 있다. 김철수 상공장관처럼 설악산에서 휴가를 제대로 보내겠다는 여유를 보이는 장관이 오히려 희귀할 정도다.<김진국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