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정바람에 “자살역풍”/유명기업인들 도덕적 비난 못이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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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당시 정치상황 뇌물 불가피”변명
이탈리아 전역을 휩쓸고있는 정치권에 대한 부정부패 사정바람이 최근 조사중이던 유명 기업인들의 자살을 계기로 수사관행에 대한 도덕적 비난에 직면하고 있다.
그동안 전직 총리 4명을 포함,상·하 의원중 16%에 해당하는 1백51명을 비롯해 ENI(종합에너지) 등 국영기업과 피아트(자동차),페루치­몬테디손(식품·화학),올리베티(컴퓨터) 등 굴지의 민간기업 간부 6백여명 등이 뇌물수수 혐의로 입건 또는 기소됐다.
그러나 이들은 2차대전이후 공산당의 재출현을 막기위해서는 기민·사회당의 민주이념으로 정권을 유지해야 했고 이를 위해 돈이 절실했다고 주장,재계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치인의 등쌀에 떼밀려 뇌물을 상납할 수 밖에 없었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던중 지난 20일과 23일 ENI의 가브리엘레 카글리아리 전 회장(67)과 페루치 그룹의 라울 가르디니 전 회장(60)이 자살하는 등 모두 10명이 자살했다.
89년 ENI의 회장에 취임한 카글리아리의 경우 2백70억리라(약 1백35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조성한 혐의였다. 중소기업이던 페루치그룹을 유럽 최대의 곡물 수출기업으로 성장시키며 「황금의 손」으로 불리던 가르디니는 변칙 장부기재 등으로 최소한 4백80억리라를 매수자금으로 유용했다.
피아트도 지난 10년동안 정치권에 5백억리라를 불법으로 제공해왔다며 당시의 정치 상황과 뇌물의 불가피성을 주장했다.
기업을 살리기 위한 자구책으로 정치권의 뇌물압력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죄없는 죄인」이 됐다는 모멸감에다 제도적 폭력과 사회적 비난을 감내하기 힘들었고 결국 자살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경제계의 시각이다.
사법 당국은 그러나 정치권은 기업에 보호막을 쳐주고 기업은 이 온실속에서 성장을 거듭하며 부패의 뿌리를 키워 결국 사회 전체를 비리구조로 만들었다고 보고있다. 이 사슬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 확고한 방침이다.<고대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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