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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임직원 현지화 연수"붐"|"그나라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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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있을 때 먹고, 보일 때마다 사라」.
삼성전자 황경식 사원이 1년 동안 몸으로 배운 러시아식 생활의 지혜다. 심각한 생활 필수품난과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인플레 때문이다.
삼성물산 김종득 대리는 중국어 단어 한마디도 모르는 상태에서 대만 땅을 밟았다.

<삼성 2천명 계획>
현지에서 4개월 동안 하루 4시간씩 선생을 모시고 1대 1의 중국어 발음 교육을 받았으며 다시 7개월 동안 대학 부설 어학 코스에서 오전 내내 교육을 받았다.
그는 『혀를 말아 소리를 내는 권설음을 익힐 무렵 두시간의 발음 공부가 끝나면 턱과 혀가 얼얼해 식욕을 잃고 끼니를 건너뛴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1년이 지난 뒤 중국 본토로 건너가 보름동안 떠돌아다니면서 『혹시 홍콩에서 오지 않았느냐』는 말을 듣고서야 그는 중국화에 반쯤은 성공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삼성그룹이 91년부터 시행중인 독신자 파견 해외 현지 전문가 과정에서 사원들이 마주친 일들이다.
세계의 뒷골목 선술집에서 최고급 호텔까지, 또 시베리아에서 남아공화국 케이프타운까지 이들 현지 전문가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지금까지 45개국에서 2백80명이 1년 동안의 과정을 마치고 돌아왔으며 2백50명이 현지에서 활동중이다.
1인당 경비는 평균 연 5만 달러. 해야할 일은 업무를 완전히 떠나 현지 사람들과 사귀며 「그 나라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것이다.
이를 위해 삼성은 5년간 (91∼95년) 1억 달러를 투자해 매년 입사 3∼5년차 사원 4백명씩을 선발해 세계 45개국에 파견, 모두 2천명의 지역 전문가를 기를 방침이다.
결실은 조금씩 보이고 있다. 삼성물산 이철희씨의 결혼식에는 현지에서 사귄 일본 정부의 젊은 사무관을 포함, 일본인 친구 6명이 직접 방한했다.
또 삼성물산 로가디스 양복 광고에 나오는 이탈리아 의류 전문가도 민용기 대리가 현지에서 사귀어 직접 섭외한 경우.
대한항공도 과장·대리급을 매년 1백명씩 선발, 대한항공이 취항하고 있는 세계 곳곳에서 6개월 동안 현지화 교육을 시키고 있다.

<대학 연구 과정도>
이처럼 최근 해외 연수의 두드러진 추세는 신입사원이나 입사 3∼5년차 사원을 해외에 집중적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해외 연수가 「투자」의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
선경그룹은 전체 신입사원을 2인 1조로 해 생존비 1백50만원과 시장 조사 등 개별 과제를 주어 일본에 보내는 「지옥 훈련」을 시키고 있다.
얼마 전까지 해외 연수라면 으레 회사에 공이 많은 사람들을 위로 겸 놀러보내는 것으로 여기던 것과 비교하면 판이하게 바뀐 것이다.
경기가 나쁜 요즘에도 미래를 대비한 해외 연수 등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는 꾸준히 늘어 한국 능률 협회가 최근 조사한 「인적 자원 투자 실태 동향」에 따르면 지난 한햇동안 기업의 훈련비 (6백1개 상장 회사 기준)는 모두 2천9백24억원으로 전년 대비 29·4%가 늘어났다. 전체적으로는 아직 매출액 대비 0·15%에 불과하지만 다행히 첨단 분야의 대기업을 중심으로 훈련비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보편적인 해외 연수로는 언어와 기술 습득, 그리고 미래의 경영층을 양성하기 위한 연수를 들 수 있다.
선경그룹은 88년부터 천둥새 프로그램에 따라 엘리트 과장급과 부장급 20명을 대상으로 4개월 동안 해외 연수를 보내고 있다. 이들은 미국의 대학에서 세미나식으로 경영학 2백50시간, 영어 1백50시간을 교육받는다.
삼성그룹은 21세기 경영자 과정을 설치해 차장급 중간 간부 50명을 선발, 3개월 국내 합숙 훈련과 3개월 해외 연수를 받도록 하고 있다.
대한항공도 임원급 중 일부를 해외 유명 대학 MBA과정에 연수 보내고 있고 한라그룹도「한라 프로그램」에 따라 해마다 임직원 10명씩을 2년 동안 미국 대학 MBA코스를 밟도록 하고 있다.
금성사는 특이하게 특허나 재무 관리를 맡는 중간 간부를 1년 정도씩 해외 연수를 내보내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해외 연수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최근 경영자 총 협회의 설문 조사 결과 업무량이 많아 직원들을 연수 보낼 수 없다는 회사가 43·4%에 이를 정도여서 상당수는 미래가 아니라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인력 관리 등 맹점>
해외 연수가 끝난 뒤의 인력 관리에도 맹점이 있다.
연수에서 돌아온 사원들의 이직률이 높고 연수에서 습득한 지식도 개인적인 차원에서 머무를 뿐 회사 전체가 공유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린 의미에서 삼성그룹의 귀임 제도는 한번 눈여겨볼 대목이다.
삼성그룹은 해외 주재원이나 독신자 파견 제도를 마치고 귀국하면 곧장 원직으로 복귀시키지 않고 상당기간 지역 연구소에서 귀임 과정을 밟게 한다.
이때 현지에서 사귄 친구, 현지인들의 습성, 경쟁 회사들의 동향, 현지의 상황과 개선해야할 문제점들을 면밀히 분석해 자료로 남긴다.
이 자료가 기업 자체 뿐 아니라 그 나라를 찾을 다음 사람에게 귀중한 이정표가 되기 때문이다. <이철호 기자>

<「경제와 생활」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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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산업 선점…기업들 경쟁 치열-26면
방학 독서 지도 매일 한두 시간씩-28면
일 욕심 많은 형 심장병 "요주의"-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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