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든 「안일」에 쐐기/김 대통령,2단계 사정 천명 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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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부정축재자는 공직추방”강한의지/“과거정부 감싸지말라”청산함축도
김영삼대통령이 13일 국무위원 간담회에서 제2단계 공직자 사정 및 기강확립을 천명한 것은 YS특유의 허를 찌르는 강수다.
「한미 정상회담이 잘 끝났으니 대통령이 덕담이나 나누겠지」라고 짐작하고 간담회에 참석했던 대부분의 국무위원들은 예상밖의 경고에 모두 긴장하는 표정이었다. 아울러 김 대통령의 국정 운영 포인트가 어디 있는지를 새삼 실감하는듯 했다.
김 대통령은 최근 출범 5개월째 들어서면서 휴가철을 맞아 공직사회를 포함해 사회전반에 이상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즉 「YS인들 크게 다를게 있겠느냐. 이쯤해서 풀어질테지」라는 분위기가 감지되었다는 것이다.
김 대통령은 평소 갖가지 채널과 각계와의 대화를 통해 비교적 민심동향을 면밀히 체크해왔다. 여기서 들려오는 공통의 소리가 개혁에 대해 『언제 한두번 있던 일이냐』는 비아냥조의 확산이었다. 더불어 한때 고개숙였던 부조리가 다시 일어나는가 하면 무사안일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기업인 등을 통해 장·차관은 예외지만 상당수 공무원들이 기업·민원인에게 돈을 요구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경악했다고 한다.
김 대통령은 개혁에 염증을 느끼거나 저항하는 기류를 여기서 차단하지 않으면 남은 임기동안의 국정 운영에 차질을 빚을 것이란 판단을 한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 적발되는 부조리에 대해선 과거와는 비교가 안되는 처벌을 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대통령이 고위공직자재산 재등록·공개를 앞두고 제2의 사정을 들고나온 것은 재산공개를 통해 우리 사회 지도층의 도덕성을 다시한번 스크린하고 통과된 사람들에 대해선 갖고 있는 재산에 정당성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반대로 떳떳치 못한 축재자는 아예 공직에서 추방하고 과거와 같은 방법으로 치부를 꿈꾸는 공직자들에겐 「꿈깨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김 대통령이 공직자 전체의 부조리·적당주의를 질타하면서 장관들의 각성을 촉구한 것 또한 관심이 가는 부분이다.
김 대통령은 정부시책의 혼선과 손발 안맞는 일처리,장관의 업무 미숙 등으로 정부 전체가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는 지적을 아주 불만스러워 하고 있다. 장관들의 리더십 결여가 공직사회의 부조리·무사안일을 방치하는 것과 직결된다는 점에 유념해왔다. 김 대통령이 일관성 있는 정부 정책의 수립과 추진,분명한 목표 설정을 강조한것도 이런 때문이며 충분한 업무파악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제대로 일과 사람을 추스르지 못하면 응징하겠다는 의지 표시를 담고 있다.
김 대통령은 장관들에 대해 『국회 답변 과정에서 과거 정부의 잘못을 애써 변호하다 실수할 때가 많다』며 『과거 잘못을솔직히 시인하고 이를 고치는 자세를 보이라』고 촉구했다. 이것은 새 정부가 공연히 옛날의 잘못을 뒤집어 쓸 필요가 없다는 점은 물론 단호한 과거 청산의지를 내포한 것이다.<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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