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칼럼] 한나라당의 오렌지나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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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안기부 출신 의원과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은 젊은 의원 간에 설전이 붙었다. 요즘의 화두인 물갈이 때문이었다. 젊은이가 "인권 탄압한 사람은 물러가라"고 말하자 "내가 조국을 위해 일할 때 미국에서 오렌지족으로 떵떵거리며 살지 않았느냐"로 반박했다. 한쪽은 "과거 인권탄압을 했던 당신들 때문에 우리가 지금 죽게 생겼으니 이제 물러나라"는 얘기이고, 다른 쪽은 "우리가 고생할 때 부모 잘 만나 유학하고 지역구까지 물려받은 당신이 지금 와서 누구보고 나가라는 얘기냐"는 주장이었다. '인권탄압'과 '오렌지' 간의 갈등, 어쩌면 이것이 오늘의 한나라당 현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 보수주의 핵심가치조차 못지켜

총선을 앞두고 물갈이가 유행어가 되었다. 물갈이를 안 하면 썩은 정당이고 물갈이를 하면 좋은 정당이라는 단순논리가 횡행하고 있다. 물갈이는 해야 한다. 새 물이 흘러들어 오면 고여 있던 물은 흘러가 주어야 한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그러나 그 물갈이 방식은 그 당이 지향하는 바에 따라 다르고, 달라야 하는 것이다. 보수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의 물갈이와 진보.급진을 지향하는 정당의 물갈이는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나라당은 물갈이에서조차 자신의 정체성을 못 찾고 있다. 보수주의의 핵심 가치 중에 하나는 '전통'을 지켜 나가는 것이다. 과거를 이어받아 현실이 되고, 현실을 사는 사람들은 여기에 새로운 창조를 보태어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것은 단절이 아닌 연속을, 혁명이 아닌 개량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물갈이 논의의 구조는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매우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급진주의나 진보주의는 그럴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 이념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과거는 썩은 것이고, 나쁜 것이니 이를 뒤집어 엎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자는 것이기 때문에 물갈이도 그런 식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보수주의는 달라야 한다. 물갈이 방식이 진보.급진주의자들과 똑같다면 그것은 보수주의를 포기하고 진보와 급진주의를 모방하는 것이며 한 시대의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다.

인권탄압과 오렌지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지금 진보와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보수를 공격하는 데 가장 앞세우는 것이 과거 정권, 즉 한나라당의 부정적인 유산이다. 과거의 인권탄압이 그렇고, 오렌지족으로 상징되는 부유층의 일탈이 그렇다. 인권 탄압의 역사를 쓸어버리고, 오렌지족들이 없는 그런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나 보수주의의 접근은 달라야 한다. 인권탄압이라는 어두운 세월을 어쩔 수 없이 겪으면서 경제발전을 이룩했고, 경제발전의 부산물이 오렌지족인 것이다. 이러한 병리적 현상까지도 우리의 유산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나라당에서의 싸움은 오렌지가 자기 나무를 보고 "너는 내 나무가 아니야"하는 것이고, 나무는 오렌지를 보고 "너는 내 열매가 아니야"하는 것과 똑같다. 그렇다면 그런 나무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베어 버리는 것이 낫다. 그것이 바로 급진주의적인 발상인 것이다.

*** 오렌지가 나무보고 "내 나무 아냐"

한나라당의 정체성 위기는 여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처리에서도 한나라당은 보수주의를 포기했다. 보수주의라면 당연히 시장원리와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당론이 정해져야 했다. 그러나 농민이라는 특정계층 표를 의식해 포퓰리즘에 영합했다. 이라크 파병도 마찬가지다. 진보정당이 파병을 반대할 때 분명히 찬성을 당론으로 정해야 했다. 내세우는 말은 보수정당이라고 하면서 행동은 필요에 따라 진보도 되고, 포퓰리스트 정당도 되는 것이다. 그런 정체성을 상실한 정당을 누가 찍을 것인가.

한나라당 물갈이는 한나라당식이 돼야 한다. '뒤집어 엎는 것'이 아니라 '넘겨주고 이어받는 것'이 돼야 한다. 릴레이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골인점을 향해 잘 뛸 수 있는 새 선수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것이다. 또 나이 많다는 이유로, 5.6공 출신이라는 딱지를 붙여 '일거에 몽땅' 선수교체를 해서도 안 된다. 뛸 힘이 남아 있고, 잘 뛰는 선수들은 계속 뛸 수 있게 해야 한다. 목표는 자유민주주의의 완성이다. 누가 잘 뛸 수 있느냐가 우선이지 나이가, 출신이 기준은 아닌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보수주의 방식의 물갈이다.

문창극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