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봉숭아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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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민영(1934~) '봉숭아꽃' 전문

내 나이
오십이 되기까지 어머니는
내 새끼 손가락에
봉숭아를 들여주셨다

꽃보다 붉은 그 노을이
아들 몸에 지필지도 모르는
사악한 것을 물리쳐준다고
봉숭아물을 들여 주셨다

봉숭아야 봉숭아야
장마 그치고 울타리 밑에
초롱불 밝힌 봉숭아야
무덤에 누워서도 자식 걱정에
마른 풀이 자라는
어머니는 지금 용인에 계시단다



밤에 배를 저어 바다로 나갔다가 노랗게 빛나는 큰 별 곁에 분홍색의 작은 별이 깜박깜박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두 별 사이에 무슨 좋은 일이 있었나, 두 별 사이에 무슨 향기 깊은 꽃이라도 피었나 생각했는데 노시인의 시를 읽다가 무릎을 친다. 아, 엄마별이 아가별에게 봉숭아물을 들여 주고 있었구나. 아침밥 먹고 들일 나가기 전에 햇살 좋은 토방머리에 앉아…. 아들 차례가 끝나면 나이 쉰 아들이 칠순 엄마의 손톱 위에 다시 봉숭아 물을 들이느라 햇살은 더 따스해지고….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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