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가 맡는 불 국교축제(특파원 코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사전조사 통해 음식·놀이종목 분담/「이기」와는 거리먼 “개인적 자유주의”
9월 학제를 택하고 있는 프랑스에서는 매년 6월말이면 학교별로 축제행사가 벌어진다.
축제라지만 학생들이 참여하는 일종의 학예발표회에 학부모가 참여하는 바자를 혼합한 형태다.
축제를 앞두고 학부모회에서는 행사와 관련한 학부모들의 자발적 봉사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게 된다.
얼마전 아들이 다니는 국민학교에서 받은 편지에는 행사당일에 준비해 제공할 수 있는 음식,바자에 내놓을 물건을 조사하는 것에서부터 가능한 한 아이들 놀이지도 종목을 써내라는 것까지 다양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제시된 놀이종목은 공던져 깡통 쓰러뜨리기·오리낚시·활쏘기·면도칼로 풍선거품 벗기기·줄넘기 등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간단한 놀이들로,이 가운데 어느 하나를 골라 필요한 장비 준비와 게임 진행을 맡아 달라는 얘기였다.
사전조사를 통해 음식을 분담하고 바자에 나온 물건값을 정해 좌판을 벌이고 음식을 정리해 나눠주는 등의 일은 아이 엄마들이 맡고,놀이 진행은 철저하게 아이 아빠들의 몫이었다.
기본적으로 학생수가 학급당 20명 안팎밖에 안되는 탓도 있겠지만 어느 학부모건 한가지 일은 맡아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은 이 놀이판,저 놀이판을 오가며 신나게 뛰어놀고 학부모들은 또 학부모들대로 서로 준비해온 음식을 나눠 먹으며 자기들끼리,또는 선생님들과 어울려 대화의 꽃을 피우는 모습은 진정한 학교 축제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아이들과 선생님이 준비한 학예발표회도 꾸밈이 없어 좋았다. 우리 같으면 똑같은 복장이나 분장으로 통일했을 법도 하지만 색깔이나 형태만 비슷하게 맞춰 각자 가진 옷을 그대로 입고 나온 것은 인상적이었다.
행사가 끝난뒤 학교운동장을 치우고 정리하는 것도 모두 학부모들이 했다.
프랑스 사람들을 흔히 개인주의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다르다는 것을 프랑스에 살면서 실감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 사람들이 남에게 간섭받기를 싫어하고 자기 방식대로 살고 싶어한다는 의미에서 프랑스인의 개인주의는 자유주의와 일맥상통한다.
또한 이 개인주의는 자신의 자유가 중요한 만큼 남의 자유도 중요하다는 인식을 기본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 사람들의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는 다르다.
프랑스 개인주의의 바탕이 이기주의였다면 학교축제에서 학부모들의 자발적 협동문화를 찾아보기는 어려웠을 것라는 생각이다.<파리=배명복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