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의 죽음-개미 도시 추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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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 마리의 개미, 혹은 하나의 개미 도시가 태어나 성장하고 멸망해 가는 과정을 치밀하고 생동감 있게 그린 과학소설.
프랑스의 권위 있는 과학잡지 『과학과 미래』에서 그랑프리를 받았으며 열린 책들에서 한국어판을 펴냈다.
저자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30세의 과학 저널리스트로 83년 뉴스재단의 과학논문 콘테스트에서 개미에 관한 르포가 당선돼 재단주선으로 아프리카 상아 해안에서 「마냥」이라는 개미를 연구 관찰한 일이 있는 개미박사다.
한 천재 곤충학자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뒤 그가 남긴 저서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차지하기 위한 암투가 계속된다.
곤충학자가 연구실로 사용하던 깊은 지하실 사람들이 하나 둘 실종되고 수사에 나섰던 구조대원들과 수사관마저 지하세계로 실종돼 버리자 경찰 당국은 입구를 봉인하고 수사를 포기해 버린다.
한편 개미세계인 벨로캉에서는 개미들이 원인 모를 떼죽음을 당하고 그 비밀을 밝히려는 개미는 바위냄새를 풍기는 한 떼의 개미에게 쫓기게 된다.
하나로 얽힌 이 두 사건이 팽팽한 긴장 속에서 진행되는 이 소설의 주인공은 개미와 개미의 행동양식이다.
프랑스 퐁텐블로 숲에 있는 개미집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높이 1미터, 지하 50층, 지상에 50층이 있어 그 일대에서는 가장 큰 도시다. 거주자들의 수는 1천8백만 명으로 추산된다.
연간 생산량은 다음과 같다. 진딧물 분비꿀 50리터, 연지벌레 분비꿀 10리터, 느타리버섯 4킬로그램, 방출되는 돌 조각 1톤, 실용통로 1백20킬로미터, 지표면적 2평방미터」.
개미박사인 저자는 이 책에 대해 『개미의 삶에 관한 부분은 99%가 진실』이라고 말한다.
개미는 자기들의 애벌레를 활용해 얇은 천을 만들 줄 알고 일개미가 공급한 먹이를 다른 일개미의 살아있는 냉장고에 저장할 줄도 안다. 진딧물을 사육하여 분비물을 짜내거나 술과 곡물가루와 버섯을 만들어낼 줄도 안다. 전쟁만 하면서 포로를 노예로 사용하는 개미, 나뭇잎을 따서 농사를 지으며 채식만 하는 개미, 몇 개의 마을이나 도시가 연합하여 연방국을 이룬 개미, 8∼10마리가 씨족을 이룬 개미….
전문번역가 이세욱씨가 옮긴 이 책은 번역문이라는 느낌이 전혀 안 들도록 생동감 있는 매끄러운 문장으로 채워져 있다. 또한 「애면글면」「잘코사니」「미립이 난」「오갈이 들어」등 구어체의 고운 우리말이 다양하고 적절하게 사용된 점도 높이 평가할만 하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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