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파 난병풍의 행방(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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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새 정부 들어 역사 재조명작업이 활발해지면서 80년 5공세력의 많은 비리와 기만·횡포가 드러나고 있지만 기막힌 비화가 또하나 공개되었다.
김종필씨가 모처럼 입을 열어 밝힌데 따르면 80년 신군부가 부정축재를 환수한다면서 자기가 갖고 있던 대원군의 난병풍과 김옥균의 글씨 등을 가져가 국고에 넣지않고 자기들끼리 나눠 가졌다는 것이다. 김씨는 『그 석파 난병풍을 지금 누가 갖고 있는지도 안다』고 했다.
5공 주도세력의 도덕성 수준이 이미 알려질만큼 알려졌지만 김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들의 진면목이 또 한꺼풀 벗겨진 셈이다. 새 시대를 열고 사회정화를 한다는 따위의 거창한 말을 떠벌린 뒤쪽에서 자기들은 법은 고사하고 낮뜨거운 줄도 모른채 이것저것 챙기고 집어 넣은게 아닌가.
그래도 정권을 잡겠다,국가를 경영해 보겠다는 사람은 경륜도 경륜이지만 최소한 배포와 통은 남다른데가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국가의 이름을 팔아 남의 물건을 빼앗아 자기집에 갖다두다니 얼마나 쩨쩨하고 누추한 일인가.
당초 자기들은 13평,17평짜리 아파트에 산다면서 남을 부패로 몰던 신군부 인사들이 큰짐에서 떵떵거리고 사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그러려니 했다. 모든 권력은 부패하게 마련이고 그들인들 예외가 아니라는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의 서화가 탄만다고 빼앗아가는 정도에 이르면 통상적인 부패 수준 훨씬 이하다. 『김옥균의 글씨를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한 김종필씨의 말에는 그들에 대한 인간적인 멸시가 한껏 느껴진다. 새삼 우리 모두가 그런 사람들 치하에서 살았다는게 부끄럽다. 석파 난병풍은 누가 가졌는가. 입이 열개라도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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